[week& cover story] 위크앤 제안 '비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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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습니다. 세월이 바뀌는 길목입니다. 이맘 때면 누구나 마음 속을 정리하지요. 켜켜이 쌓인 기억에서 털어낼 것은 털어내고, 비울 것은 비우지요. 그 빈 자리에 희망과 새로운 다짐을 담지 않습니까.

그런데 비울 게 어디 마음뿐입니까.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여기저기 추억의 한자리를 차지했던 지난날들의 흔적이 널려 있지 않습니까. 한때는 소중했지만, 지금은 전혀 소용이 없는 물건들 말입니까. 몇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신발장에서 잠자는 낡은 구두, 창고를 가득 채운 잡동사니, 책상 위 가득한 서류 더미들….

어느 하나 사연 없는 게 있을까요. 하지만 이번 주 week&은 감히 제안합니다. 과감히 버리십시오. 언제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나와 내 가족의 분신이어서 망설여진다고요.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지요.

"남편은 5년 전 죽었지만, 그의 유품을 버리는 일을 계속 미뤘습니다. (…)드디어 그의 옷을 정리할 용기를 얻었고, 재활용 가게에 갖다줬습니다. 마치 신선한 공기가 내 인생에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내 나이(72)에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얼마 전 대학에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사이버 유모가 될 생각입니다."

영국의 풍수 전문가 캐런 킹스턴의 책 '아무 것도 못 버리는 사람' 중 한 토막입니다. 아무리 애틋한 추억이 깃들어 있더라도 몇 년 동안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다면, 그것을 쌓아두는 것은 부질없는 집착일 뿐입니다. 과거로 가득 차 있으면 미래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미련없이 비우십시오. 버리는 것도 때론 훌륭한 절약입니다. 새해를 앞두고 마음도, 몸도, 주위도 싹 비워보십시다. 비운 만큼 새로 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진은 대관령 삼양목장.

글=이훈범 기자<cielbleu@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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