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연상 미군과 결혼…이기희씨 자전에세이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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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던 1970년대 초반, 17년 연상 미군 고급장교와의 전격 결혼과 도미(渡美). 7년 만의 사별과 중국계 미국인과의 재혼. 다운증후군 장애아 출산…. 최근 출간된 자전 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을 통해 밝힌 재미교포 사업가 이기희(51.사진)씨의 일생은 웬만한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

저서 출간에 맞춰 한국을 찾은 이씨는 29일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한 평생"이었다고 지난날을 회고했다. 그는 "2년 전 두 권짜리 장편소설 '찔레꽃'에서 밝혔던 내용들이지만 소설이라는 익숙치 않은 형식 대신 좀 더 직접적으로 속내를 털어놓고 싶어 에세이집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에세이집에는 동양의 유색인종이라는 편견과 개인적 불행을 딛고 잘나가는 화랑을 설립해 미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까지 이씨의 절절한 사연들이 녹아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국내 유명 문인과 자신과의 인연을 밝힌 부분이다. 이씨는 에세이집 72쪽에서 그런 내용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이씨에 따르면 소설가 이문열씨의 장편소설 '변경'과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또 전 문화부장관 이창동씨의 소설가 데뷔작품인 단편소설 '전리'에서 한국 남자를 배반하고 미국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 등장인물은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다. '추락…'에서 여주인공과 유럽으로 정사 여행을 떠난 부동산업자의 이름이 버드월스인데 자신의 첫 남편의 성이 버드월스라는 것이다.

최근 이문열씨는 이씨의 에세이집 내용에 대해 "'변경'에서 관련 내용은 1958년을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반면 이씨의 국제결혼은 70년대의 이야기"라며 관련성을 부인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변경'에 등장하는 여인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50평생에 작은 사건에 불과하다. 문제의 등장인물이 나를 모델로 한 것이든 아니든 이제는 별 문제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하이오주 데이튼 시에서 내가 운영하는 화랑 '윈드 갤러리'가 규모 면에서는 개인 화랑 중 주 최고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미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기살기로 돈을 벌었다"는 이씨는 "에스키모에게도 냉장고 열대 쯤은 팔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학 재학시절 대구지역에서 '주변문학'이라는 문학 동인 활동을 했던 문학청년이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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