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자스민도 없고 이연화도 없고 …‘양치기 소년’ 된 한나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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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지방선거 “자스민씨는 어디 있지?”

6·2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시작된 13일. 한나라당이 광역 비례대표 의원 후보 명단을 배포했다. 그런데 서울시 비례대표 의원 후보로 영입돼 수차례 매스컴을 탔던 귀화 필리핀인 자스민씨(본지 5월 1일자 8면)의 이름은 없었다. 경기도 비례대표 후보 1번이 확실하다던 귀화 일본인 이연화씨도 명단에서 빠졌다. 부산 시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영입된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 전이경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부상으로 장애우가 된 체조 스타 김소영씨만 서울시 비례대표 6번에 올랐다. 그러나 정당 득표 55%를 얻어야 당선이 가능한 순번이다. 한나라당이 압승한 2006년 선거 당시 서울 득표율이 51%였던 걸 감안하면 당선이 쉽지 않은 자리다.

이들은 모두 당 인재영입위(위원장 남경필 의원)가 대대적인 홍보를 하며 영입했다. 김소영씨에 대해선 “장애인 배려”라고, 자스민씨와 이연화씨에 대해선 “점점 늘어나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배려”라고 생색까지 냈다.

본지 5월 1일자 8면

그러나 공천 결과 한나라당의 약속은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자스민씨는 “인터뷰 뒤 한나라당 누구로부터도 연락이 오지 않아 공천 신청도 못 했다”며 “여러 언론에 소개되는 바람에 사람들은 이미 내가 시의원이 된 줄 안다. 하도 묻는 이들이 많아 ‘공천 못 받았다’는 팻말을 목에 걸고 다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왜 이들에게 ‘양치기 소년’이 되고 만 걸까. 당 관계자들은 “인재영입위와 시·도당 공심위 간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헌·당규상 지방의원 비례대표 공천권은 시·도당 공심위에 있다. 한 서울시당 비례대표 공심위원은 “우리 나름대로 짜 놓은 구도가 있는데 아무 상의 없이 중앙에서 사람을 ‘내리꽂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남 위원장은 “시·도 당 위원장에게 얘기하지 않고 어떻게 영입해 왔겠느냐”며 “하지만 인재영입위가 공천권이 없다 보니 결국 일부 인사에게 피해가 갔다. 반성하고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누가 잘못한 건지는 아무래도 좋다.

문제는 공당의 약속을 믿었다가 영입 인사들이 받은 상처다. 세 차례나 영입 제의를 거절했던 김소영씨는 “장애인들에 대한 국가적·정책적 관심을 늘리겠다”는 말에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자스민씨는 “다문화가정을 대변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이들이 믿었던 건 인재영입위도, 공심위도 아닌 ‘한나라당’이란 이름이었을 게다. 신뢰를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란 걸 한나라당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이가영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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