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우물안 WTO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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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마침내 뉴라운드가 공식 출범했다.회의 장소가 중동이라서 테러를 걱정하며 모인 각국 대표단은 이번 회의에서 달라진 세계를 실감했다.

우선 개발도상국의 목소리가 커졌다. 인도와 파키스탄.말레이시아 등은 개발도상국가 그룹을 대표해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 맞섰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제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우루과이라운드가 출범하면 교역이 늘어나 좋아질 줄 알았는데, 막상 서비스 시장을 열고 지적재산권 보호가 강화되는 등 의무만 늘어났다며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했다.

미국은 반덤핑 조항을 고치자는 다른 나라에 맞서 홀로 상대했다. 일정을 하루 연장한 14일 인도가 막판까지 반대하는 바람에 회의는 한때 결렬 위기까지 맞았었다.

개발도상국가들은 그동안 20여개 주요 국가들이 모여 현안을 해결해온 세계무역기구(WTO)의 '그린룸'회의 방식이 '1국(國)1표(票)'를 원칙으로 하는 수석대표 전체총회로 바뀌자 막판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하나라도 더 얻으려 들었다.

이들 국가와 비교할 때 한국의 입장은 어정쩡했다. 주요 협상에서 은근히 미국을 지지하면서 개도국의 눈총을 받았는데, 정작 농산물시장 개방 확대에 대한 미국의 이해는 얻지도 못했다.

한국 대표단의 목표는 뉴라운드 출범과 농산물 시장의 점진적 개방, 반덤핑 규정의 남발 방지였다. 2년 전 결렬된 미국 시애틀 회의 때도 목표는 같았다.

수산물 보조금의 경우 시애틀 회의에선 공산품과 분리해 협상하자고 주장했다가 도하 회의에선 전체 보조금의 틀 속에서 논의하자며 별도 논의 불가론을 펴다가 논리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특히 우리가 그토록 신경쓰는 농업 분야에선 굳게 믿은 일본이 태도를 바꾸자 당황했다.

한국 대표단은 이번 도하 협상에서 연일 거듭된 밤샘 협상에도 합의가 늦어지자 물리적 한계를 느낀다며 "다들 눈만 뜨고 다닌다"고 비유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 대표단이 경쟁국이나 이해관계가 맞는 나라에 대한 충실한 정보도 없이 눈만 뜨고 회의를 쫓아다닌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차피 뉴라운드는 시작됐다. 연말부터 시작될 후속 협상에서 상대방을 미리 잘 파악하고 기민하게 대응해 실리를 찾아야 한다.

홍병기 경제부 기자 도하(카타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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