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풍 증거조작' 수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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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97년 대선 직전 허가없이 북측 인사를 접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나라당 정재문(鄭在文)의원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사건 항소심에서 검찰측이 제출한 증거가 일부 조작됐다는 판결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선고가 끝난 후 재판부가 기자들에게 "재판을 정치 폭로의 장으로 이용한 듯하다"고 밝힌 것은 더욱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은 한나라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득표를 위해 북한을 이용하려 했다는 이른바 북풍(北風)사건 중 하나다. 지난 9월 항소심 법정에서 새로운 내용의 검찰측 증거.증언이 갑자기 튀어나온 후 지난달 재.보선 과정에서 이를 민주당측이 야당 공격 자료로 활용했던 사건이다.

증거 조작은 별도의 범죄행위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형사사건에서 검찰측 증거가 조작됐다면 예삿일이 아니고 게다가 제1야당 총재를 겨냥한 사건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최근 들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 정치검사 시비가 끊이지 않는 판에 이같은 판결이 나왔으니 검찰에 다시 의혹의 눈길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감정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증거가 조작됐다고 재판부가 단정한 것은 성급하다고 검찰은 반발하고 있다. 법원측과 갈등 조짐마저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대해 재판부가 판결문을 통해 "명백히 조작된 문서로 볼 수밖에 없다""그 진정 성립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고…"라고 강력하게 부정한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鄭의원의 두 군데 서명이 완전히 하나처럼 일치하거나 가필 흔적이 뚜렷하다는 지적은 전문적인 감정이 불필요할 정도라는 의미가 아닌가.

이 사건은 법원-검찰의 갈등거리가 될 수 없다. 법원이 증거 조작이라고 문제 제기를 했으므로 검찰은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할 책임이 있다. 누가 무엇 때문에 기소 후 뒤늦게 증거를 조작했는지를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울러 이같은 어설픈 증거물이 어떻게 검찰의 판단을 통과해 재판부에 제출됐는지도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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