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 국제공조 시동] 국내외 주식시장 전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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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왼쪽)과 줄리오 트레몬티 이탈리아 재무장관이 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긴급 유럽연합(EU) 재무장관 회의에 들어가기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브뤼셀 신화=연합뉴스]

남유럽 재정위기로 지난주 크게 출렁거렸던 국제 금융시장, 주초 들어선 일단 한숨 쉬고 가는 모습이다. 유럽 각국의 공조 의지가 확인되면서다. 하지만 불안심리가 한 방에 해소된 건 아니다. 시장의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 신용평가사들이 등급을 휙휙 낮추거나, 남유럽 국가의 자구노력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못하면 시장 불안은 다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선진국의 공조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시장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제때 수습된다면 새로운 길이 트일 수도 있겠다는 조심스러운 기대도 나오고 있다. 저가 매수 기회를 노리는 투자자들이 등장한 이유다.

“결국 위기 해소의 ‘알파(α)와 오메가(ω)’는 시장과 투자자의 신뢰 회복에 있다. 당분간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비를 넘긴다면 투자심리 위축으로 꺾인 주가가 제자리를 찾고, 오히려 더 오르는 ‘베타(β) 랠리’를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리스 문자로 요약한 전문가들의 향후 시장 전망이다. 유럽 재정 위기를 키운 것은 유로화 체제와 유럽연합(EU)의 위기해결 능력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었다. 한발 늦긴 했지만 EU의 구제기금 조성 합의로 일단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재정위기 해소라는 근본적인 치유와 투자심리 회복에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금융시장도 한동안 울퉁불퉁한 길을 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증시도 외국인의 매도세가 사그라지기 전에는 본격적인 반등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한편에선 ‘쌀 때 사자’며 이를 기회로 보는 투자자도 늘고 있다.

◆아시아 시장 반등=유럽 재무장관들이 일요일 오후 급하게 모인 것은 바로 이어 개장하는 아시아 증시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일단은 성공했다. 10일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주요 증시는 일제히 반등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개인투자자들이 ‘사자’에 나서면서 전날보다 30.13포인트(1.83%) 오른 1677.63에 거래를 마쳤다. 닷새 만의 반등이다. 대형 정보기술(IT)주와 금융주 등 그간 많이 떨어진 종목들의 오름세가 컸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0.39%)를 비롯해 대만 가권지수(1.29%), 일본 닛케이평균주가(1.60%) 등도 모두 상승 마감했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은 “19일 만기가 돌아오는 그리스 국채는 막을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이 주가 상승의 배경”이라며 “시장의 연쇄 급락을 불렀던 극단적인 형태의 불안감은 잠복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시 ‘봉합’일 뿐 근본적 해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봉합 부분이 터질 때마다 시장이 출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김 팀장은 “그리스가 외채 위기는 넘기더라도 재정 위기를 해결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EU가 원칙에서 합의해 놓고서도 세부 조정 과정에서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한국 증시의 큰 변수는 외국인의 움직임이다. 10일 코스피 지수는 반등했지만 외국인은 여전히 국내 주식을 팔았다. 다만 외국인의 ‘팔자’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지만 과거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때처럼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미래에셋증권 강재웅 연구원은 “유럽계 자금은 이미 지난해 두바이 사태 때부터 유출 움직임이 있었고 올 들어 자금 유입은 주로 미국계와 단기성 자금이 주도했다”면서 “매도세가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대증권에 따르면 유럽 재정 위기가 확산될 경우 국내 주식시장에서 이탈 가능한 액수는 최대 9조원가량이다. 올 들어 현재까지 외국인 순매수액에 맞먹는 규모다. 현재 우리 증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32.7%인 289조원이다. 이 중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계 자금은 약 47조원이다. 리먼 사태 정도로 파장이 커진다면 유럽계 자금의 약 20%가 한국을 떠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런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으리란 게 현대증권의 예상이다.


◆위기의 학습효과=외국인의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된 반면 국내에선 지수의 급락을 저가매수 기회로 보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수차례 위기국면이 반복됐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주가가 회복되는 과정을 지켜본 ‘학습 효과’에 따른 것이다.

‘큰손’ 투자자와 연기금이 대표적이다. 연기금은 급락장에서 주식을 사들였고, 사모펀드로도 자금 유입이 빠르게 늘었다.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에 맡겨놓는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은 7일 16조6033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삼성증권 황금단 연구원은 “지금은 세계 금융시장이 동조화돼 있지만 불안이 가시면 각 시장의 여건에 따라 주가가 차별화될 것”이라면서 “재정이 건전하고, 경제 성장률과 기업실적이 좋은 한국이 투자 우선 순위에 놓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 위기 여파로 각 국의 출구전략 시행이 늦어질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는 등 주식시장은 이번 위기에서 ‘부수입’도 챙겼다.

하지만 이는 위기가 잦아드는 쪽으로 움직일 때의 얘기다. 크레디트스위스는 7일자 아시아 시장 관련 보고서를 통해 “유럽의 재정 위기가 아시아로 전염될 우려는 적다”며 “하지만 아시아도 금융시장의 경색과 투자 자금 이탈에 따른 간접적인 위험에서 면역을 갖춘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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