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방중 4대 포인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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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특급열차가 북·중 우의교(압록강 철교)를 지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단둥역에서 북한 측 승용차를 이용해 다롄역으로 이동했다고 중국 소식통은 전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1994년 최고지도자가 된 이후 다섯 번째다. [연합뉴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왜 지금 중국 방문에 나섰을까. 올 들어 그의 방중설은 끊임없이 나돌았지만 5월 초로 일정을 잡은 것은 큰 관심거리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으로 좁혀져 가고 있는 데다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달 30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직후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방중 포인트를 네 가지로 정리해본다.

강찬호·이영종·정용수 기자

1  북·중 경협

“화폐 개혁 실패로 후계 문제까지 위협
나진항 개발 이권 주고 식량·유류 요청”

북·중 경협 확대와 대북 지원 확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번에 반드시 챙겨가야 할 보따리다. 2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접근까지 겹쳐 경제 사정이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은 연초 ‘인민생활 향상’을 제1 목표로 제시했지만 지난해 11월 화폐개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마당(소규모 시장) 폐쇄→축소에 따른 물자 공급 부족으로 아사자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보도다. 자칫 체제 불만이 폭발해 후계 문제에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 중국으로부터의 물자 확보가 생명선인 상황이다. 경협사업은 나진항 개발이 우선 거론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나선특구를 방문해 “중요한 대외무역기지의 하나이므로 전망성 있게 잘 꾸리라”며 직접 챙긴 곳이란 점에서다. 조봉현 기업은행연구소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은 중국이 개발권을 따낸 나진항 1호부두 외에 다른 이권을 제시할 것”이라며 “대신 식량과 유류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동북 3성의 중국 물류를 나진항 쪽으로 돌릴 수 있게 해주는 대신 반대급부로 대북 지원을 얻어낼 것이란 얘기다. 중국은 김 위원장 방중에 맞춰 북한과의 변경무역에서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겠다고 3일 발표하는 등 화답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5월 2차 핵실험에 대한 대북 제재 차원에서 중단했던 위안화 결제의 길을 열어 외화 부족의 숨통을 터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100만t 이상 부족한 것으로 추정되는 식량 확보도 김정일에겐 발등의 불이다.

2  천안함

“중국 입장 북한 쪽으로 돌리려는 목적
대외적으론 논의 여부 언급 안 할 수도”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주석이 상하이에서 만나 천안함 문제를 논의한 지 사흘 만에 방중했다. 이 회담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한국이 천안함 침몰 원인을 객관적·과학적으로 조사해온 점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미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방중시켜 후 주석을 만나게 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 방중을 이어간 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수세적 국면’에서 벗어나려는 국면 전환용 카드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을 북한 편으로 돌리고 사건 흐름을 북한에 유리한 쪽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일은 최근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중국의 입장을 심각하게 판단하지 않았나 싶다”며 “이번 방중은 중국의 태도를 북한에 유리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지금 김 위원장이 갈 상황이 아닌데도 방중한 건 천안함 사건 진상에 반신반의하는 중국에 북한의 입장을 직접 설명하 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김 위원장으로부터 직접 해명을 들은 뒤 대응책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천안함이 외부 충격으로 침몰했다는 한국의 조사 결과를 전하며 협조를 요청한 한·미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데 중국의 고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북·중 양측이 천안함을 논의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언급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일의 방중 목적 중 하나가 천안함 사건 논의로 보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북한의 처지를 고려해서다.

3  6자회담

한·미 ‘선 천안함 후 6자’ 분열 노려
전격적으로 회담 복귀 선언할 수도

김 위원장이 후 주석과 정상회담에서 전격적으로 6자회담에 복귀한다고 선언하는 등 전향적 입장을 밝힐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천안함 사건에 쏠린 국제사회의 의혹을 분산시키는 한편 6자회담 재개를 놓고 미세한 온도 차를 보여온 한·미를 분열시킬 수 있는 데다 중국의 경제지원을 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중국은 한·미에 “천안함 문제와 6자회담 재개를 병행해 다루자”는 식의 중재안을 제시하며 회담 재개를 촉구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정부 고위 당국자는 3일 “그동안 6자회담 대신 대북 제재 해제와 평화회담을 고집해온 북한이 이 정도 목표를 위해 입장을 180도 바꿀 가능성은 약하다”며 “미국도 ‘선 천안함 원인 규명 후 6자회담’ 방침에 확고히 동의하고 있는 만큼 북한의 이간책은 가능성도 약하지만 먹히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밀접한 외교 소식통도 “이번 방중은 중국 정부가 오래전부터 초청해온 데 따른 것인 만큼 김정일은 원래 관심사였던 경제지원 문제에 집중한다는 생각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와 함께 천안함 사건 조사가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이 나 유엔 안보리 등을 통한 대북 제재가 이뤄지게 되면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선언과 관계없이 6자회담은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천안함 조사가 장기화되거나 미궁에 빠질 경우엔 더 이상 비핵화 프로세스를 늦출 수 없다는 목소리가 6자회담 참가국 사이에서 강해질 가능성도 있다.

4  김정은 동행 여부

중국 지도부에게 ‘눈도장’ 찍는 기회로
정부는 “설마 이 상황서 데리고 갔겠나”

김정일의 셋째 아들 김정은(26)이 동행했는지도 큰 관심이다.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은을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에 소개하고, 중국의 발전상을 직접 보게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북한의 후계체제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언론의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상하이 엑스포 전시장 방문 모습 등을 노출시키는 깜짝쇼를 펼칠지 모른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김 위원장은 북한 공장이나 군부대를 방문하면서 김정은을 비공개리에 동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번 방중을 계기로 후계수업 차원에서 국제무대에 데뷔시키는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일도 23세였던 1965년 김일성 주석의 인도네시아 방문을 수행한 적이 있다. 74년 2월 노동당 5기 8차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내정되기 훨씬 전이다.

대외적으로 김정은을 공개하기가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83년 6월이었다. 80년 10월 노동당 6차대회에서 후계자로 추대된 지 3년 만이다. 후계자의 존재를 감추며 ‘신비주의’ 전략을 쓰고 있는 북한의 행태에 미뤄보면 이번 방중이 후계자 공개의 계기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천안함 사건 등 김 위원장에게 부담스러운 현안이 많은 방문인 만큼 아들까지 데리고 움직이기에는 무리라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설마 이 상황에서 데리고 갔겠느냐는 생각이 든다”며 동행하지 않았을 쪽에 무게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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