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를 읽는 동물적 직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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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호 34면

경기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오죽하면 경제 전문가와 기상 전문가에 대한 이야기가 생겨났겠는가. 둘의 공통점은 매번 예측이 틀린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기상 전문가는 현재 상태라도 알려 주지만 경제 전문가는 그조차 제대로 알려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우리 경제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지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7.8%나 증가했다. 적어도 GDP지표로만 본다면 경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 그러나 이 숫자만큼 경기가 나아진다고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산업활동 동향에 의하면 광공업 생산은 전월 대비 1.6% 증가해 5개월째 증가세를 이어 가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업 생산과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각각 0.2%, 1.3% 감소했다. 제조업 가동률은 82.2%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수준이다.

이것만으론 경기가 호황인지 불황인지, 그리고 경기가 나아진다면 어느 정도 개선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따라서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물가 및 고용 동향, 관세청의 수출입 통관 실적 등 다양한 경제지표들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별 지표는 특정 부문을 나타내다 보니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것들을 아우르는 경기종합지수가 많이 사용된다. 대표적인 것이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여 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인데 3월엔 전월보다 0.5%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3월 이후 13개월째 상승세다. 반면 경기 국면을 예고해 주는 경기선행지수는 전월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경기가 좋아진다고 하는데 선행지수는 하락하니 어찌된 일이냐고 반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통계적 표현의 한계 때문이다. 경기 흐름을 보려면 전기 혹은 전년 동기에 대비한 증가율을 주로 보게 된다. 선행지수의 실질상승 효과는 0.1%쯤 있었으나 지난해는 가파르게 상승한 부분이 더 커서 이와 대비해서는 하락한 것으로 나타난 탓이다.

또 다른 한계는 즉시성이다. 통계청이 매월 지표를 발표하지만 적어도 1개월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경기 상황을 즉각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사용하는 것이 백화점·대형 마트의 매출액, 전력소비량, 고속도로 통행량, 4대 매체 광고비, 신용카드 사용액 등 실시간 점검이 가능한 속보성 지표들이다. 지표의 세부 내용을 보면 전체 숫자가 말해 주지 않는 정보도 얻어 낼 수 있다. 예컨대 지난 1분기의 백화점·대형 마트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7.8%, 4.0% 증가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계절이 바뀌면서 스포츠용품 매출도 늘어났지만 경기 회복을 나타내는 내구성 소비재인 가전문화제품의 판매가 대형 마트에서 전년 동기보다 7.1%나 늘어났다.

공식 지표 외에 피부로 느껴지는 경기판단 지표도 볼 필요가 있다. 소주 출고량과 립스틱 판매량은 대표적인 불황 지표다. 경기가 나쁘면 소득이 줄어 술 소비는 줄지만 아무래도 값싼 소주가 더 많이 팔린다. 여성들은 경기가 나쁘면 작고 저렴한 제품으로 자신을 과시하려고 립스틱의 소비를 늘린다.

병원 방문객 수도 경기를 보여 주는 중요한 지표다. 경기가 좋을 때는 성형외과 방문객이 많다. 불황 때는 정말 아파 수술을 요하지 않는 한 참고 견디기 때문에 감기 환자 등은 급감한다. 그러나 신경정신과는 스트레스로 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 불황에 더 붐빈다.

필자는 실제로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말 경제지표가 말해 주지 못하는 경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답답한 마음에 청계천 상가를 매일 나갔던 적이 있다. 당시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진 가운데 길거리 차량 수, 행인 수, 옷 색깔에 이르는 소위 피부경제지표를 유심히 관찰했던 적이 있다. 경제학자 케인스가 말한 것처럼 경기를 판단할 때 가끔은 경제지표를 넘어서는 동물적 직감이 동원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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