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대상, 부산 대청동사무소 '손현곤'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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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 중구 대청동사무소 손현곤 주사(왼쪽)가부산시 주민자치구 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못쓰는 생활용품으로 만든 야생화 화분을 손질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평생 지고 가야 할 큰 짐을 맡은 기분입니다.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공무원으로 거듭나겠습니다."

18일 제28회 청백봉사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부산시 중구 대청동사무소 손현곤(47.지방행정주사)씨는 동료들 사이에 '독일병정'으로 통한다. 무슨 일이든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확실하게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1985년 9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발을 디딘 첫해, '주민에게 봉사하는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병에 걸렸으나 자격요건에 미달돼 의료보험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었던 한 주민을 위해 애쓴 게 계기였다. 당시 그는 담당 동료 직원들을 쫓아다니며 끈질기게 설득해 보험카드를 만들어줬다. 한달 만에 건강을 회복한 그 주민이 찾아와 "고맙다"며 흘린 눈물은 그에게 공무원의 긍지와 보람을 느끼게 했다.

2000년 동사무소 업무 일부가 구청으로 넘어가면서 주민들이 불편해하자 그는 승합차 한대를 배치해 동네를 돌면서 민원인을 구청까지 태워주도록 했다. '용두산 파발마'로 불리는 이 차량은 4년째 운행되고 있다.

중구청이 99년 7월 통별로 담당 공무원을 지정, 주민 생활 현장을 확인하도록 한 것도 그해 인천 '씨랜드'화재사건 때 손씨가 낸 아이디어였다. 중구청은 이 '현장 세일즈 행정'으로 99년 573건, 2000년 414건의 민원을 해결했다. ▶주민 불편 신고 전화카드 배부▶이웃 알기 문패 달기 운동 등도 손씨의 머리에서 나왔다.

손씨는 일을 취미로 여긴 덕분에 구청장.시장.장관.국무총리상을 아홉차례나 받았다. 부상으로 받은 상금이나 상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선뜻 내놓았다. 그가 태어난 '도심 속 오지' 안창마을 주민을 위해서 봉급을 축내기도 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동생(5형제)들을 공부시키느라 자신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백화점 배달부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부산시공무원연수원(광안리) 입구에 있던 수퍼마켓 점원으로 일하면서 연수원을 드나들던 공무원이 부러워 '공복'이 되기로 결심, 85년 9급 시험에 합격했다.

임용 뒤에도 노모와 동생들 뒷바라지를 계속한 그는 "동생들을 먼저 결혼시키는 바람에 남자 구실을 못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며 "남편을 직장에 뺏기다시피 하면서 불평 한마디 하지 않은 아내에게 감사할 뿐"이라고 밝혔다.

사회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도움을 청하러 동사무소를 찾는 주민이 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서민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강진권 기자 <jkkang@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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