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한여장부 기개 떨친 오은선의 히말라야 완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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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산악인 오은선이 히말라야의 8000m급 고봉(高峯) 14좌를 완등(完登)했다.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다. 남녀 통틀어도 20명에 불과한 ‘서밋 14’ 클럽에 마침내 가입한 것이다. 대한여장부의 기개를 사해만방(四海萬邦)에 떨친 쾌거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그가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97년 가셰르브룸2다. 그로부터 불과 13년 만에 세계의 지붕에 모두 올랐다. 지난해에는 5월부터 100일 만에 4개의 고봉을 연달아 정복했다. 보통의 의지와 체력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그가 택한 마지막 히말라야는 한국 산악계와 악연(惡緣)이 많은 안나푸르나다. 히말라야의 사나이 엄홍길도 다섯 차례 만에 등정에 성공했을 정도로 험준한 산이다. 한국의 여성산악인으로 에베레스트에 첫 등정한 지현옥도 여기에 묻혔다. 안나푸르나는 특히 정상 부근의 날씨가 천변만화(千變萬化)해 산이 스스로 선택한 사람만 등정을 허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정상 도전 과정에 천둥·번개와 우박에 눈사태까지 일어났지만, 오씨의 굳은 의지를 꺾지 못했다.

오씨의 성공은 자신의 기량 못지않게 탄탄한 등반 인프라 덕분에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이 오씨까지 4명이다. 2000년 엄홍길 대장에 이어 2001년 박영석, 2003년에는 한왕용이 서밋 14 클럽에 가입했다. 목숨을 잃어가며 쌓아온 선배 산악인들의 경험 축적과 히말라야에 누운 고미영과의 선의의 경쟁 등이 이번 쾌거의 밑바탕이 됐다. 이제 오씨는 더 이상 오를 고산준봉이 없다. 그러나 히말라야보다 더 어려운 산이 남아 있다. 바로 자신 스스로를 오르는 것이다. 에베레스트에 오른 첫 인간인 에드먼드 힐러리는 일찍이 “우리가 오르는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생 검소하게 살며 모든 수입을 히말라야 재단에 넘겨 네팔에 13개의 진료소와 30개가 넘는 학교를 세웠다. 세상의 꼭대기에서 내려와 자신을 누군가의 디딤돌로 낮춤으로써 존경을 받은 것이다. 히말라야의 철녀(鐵女)에 남겨진 낮지만 높은 마지막 봉우리다. 다시 한번 오씨의 쾌거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