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동아시아의 지중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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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6일 밤 1200톤의 초계함 천안호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외부충격으로 침몰한 곳이 백령도 근해이다. 백령도는 1953년 이래 유엔군의 북방한계선(NLL)에 의해 한국의 실효지배하에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광역시의 일부이다. 그런데 1999년 북한이 느닷없이 NLL을 부인하고 백령도 남쪽까지 해상군사경계선을 그어 넣었다. 이러한 사태이후 연평도 등 백령도 근해인 서해에서 몇 차례 남북한 해전이 있었다.
지금은 남북한 긴장의 바다가 된 이곳 서해 바다는 일찍이 한반도와 중국과의 문화와 상품이 교역된 평화의 바다였다. 수 천 년 간 중국의 문물이 이 바다를 통해 한반도에 전달됐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조류가 빠른 몇 군데 난소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항해하기 좋을 정도로 안전하였다. 그 난소의 하나가 백령도에서 멀지 않은 인당수이다. 심청전의 이야기처럼 옛날에는 뱃사람이 바다의 神 용왕님에게 祭物을 받쳐야 한 해 뱃길이 편했다고 한다.
우리조상들은 한반도의 서쪽 백령도와 중국 산동성과의 거리는 이른바 “새벽닭이 울면 들릴” 정도로 가깝게 느끼고 있었다. 사실 서해는 동아시아의 지중해 같은 바다였다. 그러나 근세에 서양의 선박이 동아시아로 들어오면서 이 바다는 서양의 외침을 불러 오는 침략의 바다가 된다. 1860년 베이징이 유린되어 淸황제의 별궁인 圓明園을 불태운 침략군도 이 바다로 들어온 프랑스와 영국의 연합군이었다. 또한 조선에서는 1866년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에 들어와 외규장각도서를 약탈해 간 것도 이 바다를 통해서다
淸末 의화단 난으로 나라가 어지러울 때 左宗棠이 新疆지역으로 침투해 오는 러시아를 막아야 한다면서 塞防論을 주장할 때 李鴻章은 서해로 통해 들어오는 서양의 침략을 막기 위해 北洋水軍의 양성이 시급하다면서 海防論으로 맞섰다. 그 후 李鴻章은 많은 예산을 들여 아시아 최정예 북양수군을 키웠지만 淸日전쟁의 패배로 이 바다는 중국으로서는 굴욕의 바다가 되었다.
1970년대 말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이 바다는 國富를 가져다주는 행운의 바다로 다시 태어난다. 중심항구인 상하이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멀리 태평양과 일본까지 연결하는 중요 항구가 됐다. 이 바다의 연안지역은 중국 국토의 9.7%에 불과하나 전체인구의 35%가 이곳에 살고 국가 GDP의 60%가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이 바다를 중심으로 서울 베이징 텐진 상하이등 인구 천만 이상의 도시가 집중되어 있으며 한국과 중국의 년간 2000억불에 가까운 교역도 이 바다를 통해 이루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인천 국제공항이 백령도와 멀지 않다.
수많은 인명을 빼앗아 간 천안호 침몰사건은 2001년 미국의 9.11 테러와 비견되는 수중 테러사건으로 보기도 한다. 천안호의 선미가 20일 만에 인양되면서 침몰의 원인으로 어뢰공격의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북한에서는 줄곧 침묵을 보이다가 최근 천안호 침몰사건이 “남한정부의 자작극”운운하면서 북한과 무관한 사건으로 선전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증거가 들어 나고 투명하고 철저한 정밀 검증을 통해 원인이 모두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외국 전문가의 참여는 규명결과의 국제공신력을 한층 높힐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침몰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고 동아시아의 지중해인 서해가 평화의 바다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유엔의 협조 하에 이 바다와 관련되는 주변국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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