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은행세 도입 검토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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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부가가치세, 금융업엔 원칙적으로 물리지 않는다. 노동과 자본 같은 생산요소엔 부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과세 원리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 부가가치를 계산하기 쉽지 않다는 기술적 문제도 있다.

그런데 과세 범위도, 요율도 갖가지인 데다 까다롭기까지 한 ‘은행세’가 선진국에서 본격 논의되고 있다. 은행세는 주요 20개국(G20)의 공조 마당인 재무장관회의와 정상회의에서도 핵심 주제로 다뤄진다.


◆주요국, 총론엔 공감=논의는 ‘본전’ 생각에서 시작됐다.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각국은 무너지는 금융사를 살리려고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그렇게 했다. 국제공조란 명분도 있었다. 그 덕에 아슬아슬했던 금융 시스템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비용을 어떻게 회수하느냐다. 납세자들은 “내가 왜 세금을 더 내야 하느냐”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눈치 없는 금융사들은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납세자의 불평은 분노로 바뀌었다. 정부도 팔짱 끼고 있기 어려워졌다.

이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총대를 멨다. 올 1월 14일 오바마는 ‘금융위기 책임수수료’를 자산 규모 500억 달러 이상인 50여 개 금융사에 부과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영국·독일·프랑스가 그 뒤를 따랐다. 영국은 은행세 도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정하고, 지난달 24일 이를 위한 국제공조 등 8가지 원칙을 발표했다. 독일은 지난달 31일 은행세를 징수해 ‘안정펀드’를 조성하겠다고 치고 나갔다. 프랑스 라가르드 경제장관은 은행세 계획안을 발표하는 독일 각의에 사상 최초로 참석해 공조를 과시했다.

현재 은행세에 대놓고 반대하는 나라는 캐나다·호주 등이다. 다른 나라처럼 금융위기를 겪지 않아 은행세가 따로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캐나다는 6월 토론토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은행세는 주요 의제가 될 수 없다고 하는 등 아직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각론에선 이견 많아=국제통화기금(IMF)은 23일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은행세를 포함한 이른바 ‘금융권 분담방안’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국제금융센터는 IMF가 크게 ▶자산·부채연계 은행세 ▶초과이익세 ▶금융거래세 ▶보험수수료 등 네 유형의 은행세를 제시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가운데 자산·부채연계 은행세로 의견 수렴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등 주요국들이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세 도입의 걸림돌로는 캐나다 등의 반대 외에 선진국과 신흥국 간 이해 대립도 있다. 신흥국 금융사들은 초기 발전 단계여서 선진국형 규제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입장이다.

선진국 안에서도 ▶종류(세금 또는 수수료) ▶적용 기관(은행 또는 금융사) ▶과세 대상(자산 또는 부채) ▶과세 시기(일시적 또는 항구적) ▶재원의 용도(기존 구제금융 보전 또는 미래 재원) ▶재원을 받는 주체(독립펀드 또는 국고) ▶이중과세 문제 등에서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금융업계 역시 반발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은행 수익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은행세를 도입할 경우 미국과 유럽 은행의 주당순이익(EPS)이 3~6%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사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은행세를 보험료 정도로 여기며 오히려 더 위험한 투자에 나설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는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으로서 주요국 의견을 조정하는 역할에 치중하면서도 내부적으론 도입방안을 검토 중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13일 국회에서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이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특정분야에서 은행세를 도입하는 문제를 내부적으로 연구, 검토하는 게 정부의 입장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는 “우리도 국제적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며 “우리는 양쪽의 의견을 중간자적 입장에서 참고하면서 (정부 내에서) 치열한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귀식·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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