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풍경] 괴산군 '호산 산채한정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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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이다.

피서 길에 적어도 한두 끼는 오가는 도중에, 또는 현지에서 사먹게 마련이다. 이럴 때 음식점을 잘못 찾아가면 휴가 기분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대신 잘 골라 가면 "밥 한 공기 추가" 를 외치며 잃었던 입맛을 되찾는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질마재 고개에 있는 '호산 죽염된장 산채한정식' . 속리산이나 화양동 계곡으로 피서를 나선 사람들이라면 한끼는 이곳에서 해결해도 후회가 없을 곳이다.

원래 이 집은 음식점이 아니라 된장.고추장.간장 등을 만들어 파는 공장. 전화주문을 받아 판매하지만 직접 물건을 사러온 손님들에게 한끼 식사를 대접하자고 시작한 일이 밥집으로 커진 것이란다. 그래서인지 내부에 들어가 사방을 둘러봐도 메뉴판이 보이지 않는다. 식탁에 앉으면 사람 수에 맞춰 적당히 상을 차린다. 같은 네 명이라도 어른 넷이면 반찬의 양이 넉넉하고, 아이들이 있다면 양이 줄어든다.

그대신 아이들 밥값은 받지 않는다. 간판엔 화려하게 산채한정식이라고 표현했지만 값이나 찬으로 따지면 된장찌개 산채백반(4천원)이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

반찬은 열댓 가지. 고추장에 묻었던 무 장아찌를 비롯해 마늘 쫑.깻잎 장아찌 등 장아찌류가 잔뜩 오르고, 어릴 적 시골집에서 먹던 고추.부추.호박이 들어간 고추장떡(빈대떡)도 등장한다. 오이.고추.가지 무침에 씨감자조림도 선보인다.

모든 찬의 맛이 깊고 그윽하다. 이곳의 재래식 조선간장과 죽염으로만 간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멸치액젓으로 담근 배추김치는 칼칼한 맛이 일품이다. 쌈 야채로 상추.배추속.미나리에 쇠똥풀까지 나온다. 농약 없이 기른 것이라 생김새는 엉망이지만 무공해의 제맛을 볼 수 있다.

찬도 찬이지만 된장찌개와 밥 맛을 빼놓을 수 없다. 된장찌개에는 그 흔한 멸치도 없다. 맹물에 된장을 푼 것이 이 집 된장찌개의 육수다. 그런데 짜지도 않고 쌉쌀하며 고소하다. 시골 장맛 그대로다. 게다가 넉넉한 표고버섯과 팽이버섯이 고기 맛을 대신한다. 밥은 쌀.흑미.조.콩.보리가 들어간 오곡밥. 풋고추에 된장.고추장만 있어도 그만일 밥맛이다.

주인 부부의 인심이 좋아 말만 잘하면 주변 과수나무의 과일이나 따로 담근 동동주를 공짜로 맛볼 수 있다. 아직도 된장(3㎏에 3만원)등 장을 사가는 사람에겐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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