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日 역사왜곡의 대응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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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본의 중학교 검정 역사 교과서와 관련, 한국 정부의 수정 요구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검토 결과가 지난 9일 한국측에 전달됐다.

한국측이 지적한 사항 대부분에 관해 일본 정부는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이 명백한 오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로서 제도상 정정을 요구할 수 없다고 답변해옴으로써 우리 정부와 국민이 분격, 한.일 양국관계가 급랭하고 있다.

***교과서 검정 인식差 현격

일본 정부측 설명에 따르면 검정제도는 기술된 내용이 학습지도 요령을 따랐는지, 잘못되거나 균형감각이 현저히 결여된 기술이 없는지 등의 관점에서 검정을 실시하는 것일 뿐 집필자의 역사인식이나 역사관의 시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므로 다양한 학설로 해석이 갈려 있는 사항이나 학습지도 요령에서 요구하지 않고 있는 사항에 관해서는 정정요구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일본측은 덧붙여 특정 교과서의 역사인식과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은 1995년의 무라야마 총리 담화 및 98년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천명된 것 그대로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과 교과서 검정제도의 상관관계를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점에 관한 일본 정부와 우리의 현격한 인식차가 큰 문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이 되던 95년 8월 15일에 비로소 당시 사회당 출신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를 통해 일본이 근.현대에 행한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이웃 나라들에 다대한 고통을 주었으므로 다시 그러한 일이 없도록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나름대로 진솔한 내용의 공식입장을 표명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계속 이를 정부의 공식입장이라며 과거사를 '정리' 했다고 밝혀 왔고, 이것이 98년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방일시 한.일 파트너십 공동성명으로 이어지게 됐다.

이것이 파트너로서 양국간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가 돼 지난 3년 가까이 양국관계는 어느 때보다 순조로웠다고 할 수 있다.

양국은 이런 관계가 허물어지지 않도록 지켜나가야 할 책무가 있으며 바로 그 점에서 일본 정부는 교과서 문제에 좀더 엄격히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의 교과서에 대해서는 문부과학성이 검정기준으로 삼고 있는 지침의 하나인 '근린제국조항' 에 따라 철저한 대처를 했어야 했다. 즉 인근 아시아 제국과의 현대사의 역사적 사항을 취급할 때는 국제 이해와 협력의 견지에서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기 특정 교과서를 만든 사람들은 다른 교과서들이 자학사관(自虐史觀)에 빠져 있기 때문에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웃에 있는 우리들로서는 일본 사람들에게 자학하라고 한 일도, 할 생각도, 할 수도 없다고 본다.

다만 일본 사람들이 과거의 잘못을 분명히 인식하고 반성해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여하간 더불어 살아야 할 사이이므로 우호와 협력이 양국관계의 기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누가 뭐라고 하건 일본은 분명히 '있다' . 그러나 일본이 있기 위해 이웃인 우리가 '젯밥' 이 될 수는 없다는 것뿐이다.

***공조대처 신중한 고려를

교과서 문제와 관련, 두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교과서 문제는 한.일 양국관계의 근저(根底)에 걸리는 문제이므로 긴 안목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국내적인 상황과 연결시키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일본의 경우도 그렇고,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해결이 매우 어려워 보이지만, 어쨌든 양국관계를 전반적으로 긴 시각에서 보면서 다뤄야 한다.

둘째는, 이 문제에 대한 이웃 나라들과의 공조 문제다. 특히 이번 교과서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나라가 있고, 당장에는 공조대처가 효과적일 수 있을지도 모르나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처음부터 공조한다는 방침을 세우는 것보다 어디까지나 우리 자체의 생각이나 행동으로 대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보며 그래야 우리의 입장도 의젓할 수 있다. 물론 결과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일 두 나라는 냉랭하게 오래 있을 수 없는 사이임은 분명하다.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을지 몰라도 해결을 이루도록 꾸준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金太智(전 주일 대사.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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