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두 차례 만나 … 쌍둥이 형 총리직 포기로 당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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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러시아 방문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은 레흐 카친스키(61·사진) 폴란드 대통령은 지한파였다. 한국·폴란드 수교 20주년을 맞아 2008년 12월 한국을 국빈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이어 지난해 7월 이 대통령은 폴란드를 답방해 당시 카친스키 대통령에게 금으로 제작한 거북선을 선물하며 “이순신 장군이 세계 최초로 고안한 철갑선으로 전쟁에서 국가를 지켜낸 긍지와 승리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과 폴란드가 고난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도 민주화와 번영을 일군 점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에 카친스키 대통령은 소·사슴·버펄로 무늬를 새긴 전통 술잔을 선물로 주며 “폴란드 국민이 사냥에서 큰 성과를 거둘 때 이를 기념해 드는 축배의 잔”이라고 설명했다. 이준재 주폴란드 대사는 “카친스키 대통령은 유럽 지도자로선 보기 드물게 아시아, 특히 한국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폴란드 안에서는 ‘쌍둥이 지도자’로 유명하다. 2005년 10월 대통령 선거 당시 열세였던 그를 당선시킨 인물은 일란성 쌍둥이 형, 야로슬라브 카친스키였다. 형은 당시 중도우파 야당인 ‘법과 정의(PiS)’당 총재였다. 이 당은 대선 2주 전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했다. 당연히 총리직은 형 몫이었다. 그러나 야로슬라브는 총선 직후 “동생인 레흐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어떤 경우에도 총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폴란드에서 대통령은 외교안보를 맡고 총리는 일반 국정을 맡는다.

45분 빨리 태어난 형이 양보함에 따라 “형제가 권력을 독점하려 한다”는 비난은 사그라졌다. 오히려 동생 레흐에게 동정표가 쏟아졌다. 덕분에 대선 전 여론조사에서 2위였던 레흐는 결선 투표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레흐는 이듬해 7월 공석이 된 총리 자리에 형을 앉혔다(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동생 레흐의 왼쪽 볼에 나 있는 사마귀였다).

카친스키 대통령은 바르샤바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법학 교수의 길을 걸었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뛰어들었다. 80년대 연대노조 파업에 참가하면서 레흐 바웬사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89년 연대노조 부위원장이 되면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90년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엔 보안장관을 맡았다.

그는 2000년 6월부터 13개월간 법무장관을 맡아 강력한 반부패 활동을 펼쳐 국민적 인기를 모았다. 그 덕에 2002년 바르샤바 시장에 당선됐다. 그는 가톨릭 가치관과 폴란드 전통을 중시해왔다.

카친스키 대통령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는 관계가 좋았다.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폴란드의 군사 현대화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기지를 자국 안에 건설하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러시아와는 임기 내내 불편했다. 그가 바르샤바 시장이던 2005년 5월, 러시아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체첸 무장세력 지도자 ‘조하르 두다예프’의 이름을 딴 ‘두다예프 광장’을 조성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에서 반(反)폴란드 감정이 일었고,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과 외무부는 카친스키의 대통령 당선 시 축하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을 정도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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