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의 ‘청개구리’ 생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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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 정부 개입의 효용을 강조한 영국의 경제학자다. 2008년 말 불거진 금융위기는 그를 부활시켰다. 대부분의 나라가 정부 지출을 늘려 위기를 헤쳐나갔다.

그런데 정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곳이 있다. 러시아 북서쪽에 위치한 리투아니아다. 정부 지출은 팍 줄이고, 세금은 확 올렸다. 그러고도 경제는 회복세다. 낮은 기준금리(1.75%)를 제외하면 1998년 한국 외환위기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전과 비슷하다. 리투아니아는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상태도 아니다.

◆초긴축 정책=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달 30일 리투아니아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높였다. 지난해 -15%였던 성장률은 올해 1.6%로 전망된다. 지난해 가을까지도 리투아니아는 올해 마이너스 성장(-4.3%)이 예상되던 나라였다.

긴축은 지난해 5월 의회가 재정 감축안을 의결하면서 본격화됐다. 다른 나라들이 재정 조기 집행에 매달릴 때였다. 긴축은 올해 예산에도 반영됐다. 리투아니아 재무부에 따르면 공공지출은 33% 줄였고, 연금은 11% 깎았다. 연금을 동결만 해도 온 나라가 시위로 몸살을 앓는 게 유럽 정서다.

리투아니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20%대로 올렸다. 안드리우스 쿠빌리우스(53) 총리는 뉴욕 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외국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처지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2014년 유로존 가입을 위한 조건을 맞춰야 하는 절박감도 작용했다. ‘자의 반 타의 반’이다.

리더십도 빛났다. 허리가 휠 정도의 긴축에도 그리스 같은 대규모 시위는 없었다. 쿠빌리우스 총리는 소통과 속도를 강조한다. 그는 “가장 어려운 감축안을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가 당신을 어떻게 기록할지에 대해 생각하라’며 관계자들을 설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월급도 45% 깎았다.

◆승부는 진행형=리투아니아 재무부는 지난 2월 기대 이상의 성장세에 따라 경제 전망을 수정했다. 그러나 반론도 많다. 인구 330만 명의 작은 나라여서 가능한 일이란 주장이다.

게다가 리투아니아 국내총생산(GDP)의 45%는 수출에서 나온다. 다른 나라가 돈을 푼 효과를 리투아니아가 누렸다는 해석이다.

긴축의 대가도 혹독하다. 이 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10만 명당 35명)으로 높아졌다. 문용필 국제금융센터 연구위원은 “내수가 살아나야만 진정한 회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정난으로 제2의 위기를 맞고 있는 유럽 국가들이 리투아니아 방식을 모른 척하긴 어렵다. 1차 시험대는 다음 달 6일 치러지는 영국 총선이다. 영국 국민 입장에선 리투아니아 방식은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정책이다. 보수당은 긴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반면 노동당은 “80년대로 되돌아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80년대는 과감한 긴축 정책을 썼던 대처 전 총리 시절을 의미한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영국 총선은 유럽 경제 정책의 향방을 보여줄 시금석”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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