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 정부 개입의 효용을 강조한 영국의 경제학자다. 2008년 말 불거진 금융위기는 그를 부활시켰다. 대부분의 나라가 정부 지출을 늘려 위기를 헤쳐나갔다.
그런데 정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곳이 있다. 러시아 북서쪽에 위치한 리투아니아다. 정부 지출은 팍 줄이고, 세금은 확 올렸다. 그러고도 경제는 회복세다. 낮은 기준금리(1.75%)를 제외하면 1998년 한국 외환위기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전과 비슷하다. 리투아니아는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상태도 아니다.
긴축은 지난해 5월 의회가 재정 감축안을 의결하면서 본격화됐다. 다른 나라들이 재정 조기 집행에 매달릴 때였다. 긴축은 올해 예산에도 반영됐다. 리투아니아 재무부에 따르면 공공지출은 33% 줄였고, 연금은 11% 깎았다. 연금을 동결만 해도 온 나라가 시위로 몸살을 앓는 게 유럽 정서다.
리투아니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20%대로 올렸다. 안드리우스 쿠빌리우스(53) 총리는 뉴욕 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외국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처지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2014년 유로존 가입을 위한 조건을 맞춰야 하는 절박감도 작용했다. ‘자의 반 타의 반’이다.
리더십도 빛났다. 허리가 휠 정도의 긴축에도 그리스 같은 대규모 시위는 없었다. 쿠빌리우스 총리는 소통과 속도를 강조한다. 그는 “가장 어려운 감축안을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가 당신을 어떻게 기록할지에 대해 생각하라’며 관계자들을 설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월급도 45% 깎았다.
◆승부는 진행형=리투아니아 재무부는 지난 2월 기대 이상의 성장세에 따라 경제 전망을 수정했다. 그러나 반론도 많다. 인구 330만 명의 작은 나라여서 가능한 일이란 주장이다.
게다가 리투아니아 국내총생산(GDP)의 45%는 수출에서 나온다. 다른 나라가 돈을 푼 효과를 리투아니아가 누렸다는 해석이다.
긴축의 대가도 혹독하다. 이 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10만 명당 35명)으로 높아졌다. 문용필 국제금융센터 연구위원은 “내수가 살아나야만 진정한 회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정난으로 제2의 위기를 맞고 있는 유럽 국가들이 리투아니아 방식을 모른 척하긴 어렵다. 1차 시험대는 다음 달 6일 치러지는 영국 총선이다. 영국 국민 입장에선 리투아니아 방식은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정책이다. 보수당은 긴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반면 노동당은 “80년대로 되돌아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80년대는 과감한 긴축 정책을 썼던 대처 전 총리 시절을 의미한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영국 총선은 유럽 경제 정책의 향방을 보여줄 시금석”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