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미련 못버린 '묘향산 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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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충청남도가 전국체전 성화를 북한 묘향산에서 채화(採火)할 계획을 세우고 북한측과 1백만달러 상당의 지원방안을 협상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고있다.

한나라당이 논평을 통해 "현 정부가 대북 퍼주기를 지방까지 확산시키고 있다" 고 비난하자 충남도는 "무리해서 협상할 생각은 없다" 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민간의 지원을 받아 중고 농기계나 의약품 등을 지원하는 것은 검토해 볼 수 있다" 고 말해 묘향산 채화에 대한 미련을 감추지 않았다.

북한에서 성화를 가져오겠다는 발상은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다. 지난해 부산 전국체전 때 금강산 성화가 사용됐고, 강원도가 금강산 솔잎혹파리 공동방제작업을 펴는 등 자치단체의 남북교류 시도가 여러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또 충남도 계획이 남북 화해협력시대를 맞아 국태민안(國泰民安) 기원제의 유래가 있는 3악(岳), 즉 묘향산.계룡산.지리산에서 동시에 채화해 합화식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하니 취지도 좋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남북협력' 이 아니라 '남북거래' 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6.15 남북정상합의 내용이 가시적으로 진전되지 않고 북한은 틈만 나면 물질적 요구를 해대는데 대해 국민들의 불만이 높다. 그런 시기에 자치단체가 불씨 하나를 놓고 1백만달러 협상을 벌인다는 것을 곱게 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성화 채화라면 그야말로 남북협력 차원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성사시킬 수 있는 문제다. 북한의 자세에 일종의 배신감을 느낀다. 옥수수다 감귤이다 하면서 우리가 베풀어온 호의를 이렇게 갚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충남도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거래로 성화 문제를 해결한다면 북한측의 막무가내식 손벌리기를 고착시키고 남북협력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충남도의 주장대로 1백만달러는 가당치도 않고 민간의 현물 지원을 주선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묘향산 성화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미련을 버려야 한다. 언제까지 '퍼주기' 로 그들이 달라지기를 기다려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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