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밥 딜런 첫 내한 공연 예순아홉 나이 버거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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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밥 딜런 선생님께.

선생님, 31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첫 내한 공연은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포크의 전설을 추억하는 한국의 중·장년 관객 6000여 명이 객석을 매웠죠. 올해 나이 예순아홉. 선생님의 열정은 여전했습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수많은 뮤지션이 당신의 음악을 따라 하며 성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대중음악사 그 자체입니다.

한국 팬들도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세계를 주물렀던 농익은 목소리를 듣고 싶었겠죠. 그런데, 팬들의 기억 속에 반짝이던 당신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애초부터 화려한 무대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검은 천만 내린 무대는 오리려 “음악에만 집중해달라”는 요청처럼 읽혔습니다.

‘레이니 데이 위민(Rainy Day Women) #12 & 35’으로 무대를 열 때만 해도 객석은 설렘으로 충만했습니다. 하지만 원곡을 해체한 듯한 당신의 목소리는 적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최신 발표 곡이 주로 들렸던 탓만도 아닙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줄곧 거칠게 갈라졌습니다. 마디마디 거칠게 악센트를 내뱉는 선생님의 보컬은 두 시간 내내 모든 곡을 비슷하게 들리게 했습니다. 가사를 겨우 알아 듣고서야 곡명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기타 대신 키보드를 잡은 모습도 어색했습니다. 간혹 들리는 하모니카 연주로만 선생님의 전성기를 더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크 싱어이자 록커였고, 저항 가수이자 성직자였으며, 시인이자 화가였던 선생님이 자신의 이미지를 무너뜨리며 진화해 온 것을 잘 압니다. 해서 이번에 만나본 선생님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밥 딜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의 본질이 ‘소통’이라면 이번 공연은 불합격에 가깝습니다. 단지 휘어버린 목소리 탓이 아닙니다.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밥 딜런을 들려주려는 작은 배려가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앙코르 무대에서 당신의 대표곡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이 나오자 수천 명이 일제히 일어나는 걸 보셨겠죠. 그날 무대에서 팬들은 밥 딜런이란 천국의 문을 두드렸지만(Knockin’ On Heaven’s Door), 선생님은 당신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제목처럼 답하는 듯했습니다.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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