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인수 · 합병 둘러싼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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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미국과 유럽이 첨단기술 기업의 인수.합병(M&A)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인 AS ML사가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그룹(SVG)을 16억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선언하자 미 국방부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 며 제동을 걸었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미 정부에 서한을 보내 깊은 우려를 표했으며, 유럽연합(EU)의 파스칼 라미 통상담당 집행위원도 미국의 로버트 졸릭 무역대표부(USTR)대표와 폴 오닐 재무장관을 만나 "이 문제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며 압박을 가했다.

이 문제는 미국의 11개 정부기관으로 구성된 해외투자위원회가 심사를 한 뒤 부시 대통령이 이들의 의견을 참조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돼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미해외투자위원회에서 다른 정부 기관들은 인수에 찬성했으나 국방부가 완강히 반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방부는 이 회사가 갖고 있는 기술 중 일부가 첩보위성에 사용되는 것이어서 다른 나라의 손에 넘어가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ASML사와 이 회사와 제휴관계인 독일의 칼 차이스가 중국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유럽측은 순전히 안보상의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미국의 첨단기업이 외국으로 넘어가는 데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이체텔레콤도 미국 이동통신회사인 보이스스트림(2백60억달러)을 인수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도이체텔레콤은 지난해 7월 인수계획을 발표했으나 ▶대주주가 독일 정부이고▶미국의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승인을 받지 못하다가 25일에야 겨우 허락을 받았다. 최종 인수까지는 미국 해외투자위원회의 심사와 부시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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