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라크서 철수 권고 불구 한국인 7명 잔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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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의 철수권고를 무시한 채 '사업'을 이유로 계속 머물고 있는 한국인 7명 때문에 정부에 초비상이 걸렸다.

25일 정부 핵심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나오게 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어 걱정"이라고까지 했을 정도라 한다. '제2의 김선일 사건'을 우려하는 정부로선 강제로라도 이들을 소개(疏開)하고 싶지만 현재로선 관련 법에 그럴 만한 근거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 7명은 현재 자이툰 부대가 파병된 아르빌 인근 지역에 있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한사코 잔류를 고집하는 이유는 현지에서 400병상 규모의 대형병원 공사를 수주했기 때문이다. 공사 수주액만 5800만달러(약 670억원)가 걸린 대형 프로젝트다.

주목되는 것은 이들이 속해 있는 업체의 경영자 중 한명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수행비서 출신인 이재만(41)씨라는 점이다. 그는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2002년 '최규선 게이트' 사건 당시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하면서 최씨에게 대통령 일정 등을 알려줬다는 이유로 구설에 올랐던 인물. 이씨가 대형병원을 수주하는 과정에선 미국의 스티븐 솔라즈 전 하원의원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씨에게 솔라즈 전 의원을 연결시켜준 인사는 최규선(44)씨다.

형 집행정지 중인 최씨는 현재 서울시내 모 병원에 입원 중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 자신에게 문병왔던 솔라즈 전 의원을 이씨에게 연결시켜 공사를 따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여전히 '녹슬지 않은' 수완을 발휘한 셈이다. 최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씨에게 솔라즈 전 의원을 소개해준 적은 있지만, 회사 운영에는 전혀 관여치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도 "최씨와는 서로 조금씩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외교부 관계자는 "최소한 내년 1월 이라크 총선 때까지만이라도 인근 국가로 철수해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이들이 '현지인 민병대원을 13명이나 고용하는 등 경호를 철저히 하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난감해 했다.

박신홍.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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