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다차원 정상외교의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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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01년은 남북한과 주변 열강들의 외교행보가 어느 해보다 활발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어제 있었던 한.러 정상회담에 이어 3월 7일 한.미 정상회담이 워싱턴에서 개최되고, 4월에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예정돼 있다.

*** 북의 외교적 대응에 주목

중국 장쩌민(江澤民)주석의 평양 방문 가능성이 있으며, 10월 상하이(上海)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 EC)정상회의를 전후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동북아 순방이 이뤄질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과 한.중, 한.일 정상회담 개최, 그리고 미.일.중.러 간의 정상회담 일정까지 합치면 동북아 지역에서 정상회담이 그야말로 봇물 터지듯 열리게 된다.

동북아 지역에서 정상회담이 폭주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미국과 북한 때문이다. 탈냉전기의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진 가운데 부시 공화당 행정부의 대외정책 방향에 관심이 모이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북한의 외교적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전임 빌 클린턴 행정부와 달리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를 적극 추진할 태세이고, 중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가 아닌 '전략적 경쟁자' 로 파악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해 '상호주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미국의 NMD 추진이 '패권 확대' 의 일환이라고 비난한다. 중국 역시 대미 교역을 통한 경제발전을 최우선시하면서도 미국과의 군사력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을 우려한다. 반면 일본은 부시 행정부의 미.일관계 강화 의지를 이용해 자신의 행동 반경을 넓히고 싶어 한다.

무엇보다 북한의 걱정이 제일 클 수밖에 없다.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와 어렵사리 이룩한 관계개선을 향한 모멘텀이 부시 행정부의 등장으로 인해 상실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金위원장은 지난 1월 상하이를 방문해 개방에 대한 의지를 부시 행정부에 보여주려 했고, 대미관계 개선 가능성이 줄어들 경우에 대비해 중국.러시아와의 연대를 구축하려 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역이용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려 하며, 더 나아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행사하고자 한다.

우리는 한.러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친 현 시점에서 동북아 안정과 한반도 평화라는 국익수호를 위해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유념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다차원 정상외교에 임해야 한다.

첫째, 동북아의 역학관계를 잘 파악하면서 외교에 임해야 한다. 동북아 국제관계는 미국의 강력한 힘에 의해 중국.일본.러시아간의 균형이 유지되는 관계다. 미국의 이러한 역할은 주일 및 주한미군의 존재에서 나타난다.

미국이 이 지역에서 사라졌을 때 미국을 대체해 질서를 유지해 줄 수 있는 나라의 출현을 조만간 기대하기 힘들다. 더욱이 동북아에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 같은 제도화한 안보협력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한국은 동북아의 힘의 균형자인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 이외의 주변 열강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나 우리의 외교목표가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미국에 대한 '패권 견제' 일 수는 없다.

한국이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나름대로 대접받는 이유는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과 멀어지면 이들 나라가 우리를 더욱 잘 대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을 도외시한 순진한 생각이다.

*** 화해협력 '틀' 깨지 말아야

마지막으로, 북한을 변화로 유도하기 위해 주변국들을 잘 활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이 진정으로 변화하기 위해선 미국,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가 개선돼야 개방에 필요한 투자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다음 주에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의 대북 화해협력정책과 부시 행정부의 상호주의 원칙을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진다면 북한의 변화와 북.미 및 북.일관계의 '정상화' 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올 한 해 정상회담의 홍수 속에서 힘의 흐름을 잘 파악해 남북화해협력 과정이 성공적 결실을 보기를 기대한다.

金聖翰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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