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정치적 수습 어떻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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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헌재의 '신행정수도 이전' 위헌 판결에 대해 여권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판결 직전까지만 해도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겠다"던 열린우리당이다. 그러나 막상 헌재 결정이 나오자 "당정협의를 거쳐 국민여론을 수렴하겠다"(열린우리당 임종석 대변인)고만 했다. 헌재 판결 내용을 수용하겠다는 말은 여권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여권 핵심부는 20일 밤 헌재의 기류를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대응책을 내놓지는 못했다고 한다. 사태는 그만큼 심각했다. 지금 와서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현실이 여권을 더욱 옥죄고 있다. 결국 여권 내 모든 눈과 입은 노무현 대통령으로 향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장고가 끝나봐야 수습 방향도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시간을 버는 형국이다.

노 대통령과 여권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두 가지뿐이다. 수도 이전을 포기하거나, 개헌을 통한 재추진이다. 국회 과반의석을 겨우 확보하고 있는 여당이 개헌(재적의원 3분의 2 찬성 후 국민투표)을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의원은 151명(총 299명)이다. 그렇다고 참여정부가 목표 1호로 내걸었던 '행정수도 이전을 통한 지방분권시대 개막'을 포기한다면 남은 임기 3년의 정국 운영 구상은 전부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이 사이에서 노 대통령은 어떤 묘수를 찾을까.

지난 7월 8일 노 대통령은 '인천지역 혁신발전 5개년 계획 토론회' 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행정수도 이전 반대는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퇴진 운동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수도 이전을 쉽게 포기할 수 없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이 곧바로 '개헌-국민투표-신행정수도 재추진' 카드를 내밀기는 어렵다. 행정수도 얘기를 꺼내기조차 힘들다. 여권으로선 우회하는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종착역이 불분명한 완행열차를 타는 식이다. 첫 번째로 친여세력의 재결집을 시도할 것이다. 그것을 통해 보수 기득권 세력과의 전면전을 전개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헌법 재판관들이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 "기득권층의 반격"이라는 감정 섞인 얘기들이 여권 내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헌재의 결정 자체가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따져보는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헌재 결정을 둘러싼 여론충돌을 기대하는 듯하다. 여권은 이를 토대로 다른 형식의 승부수를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수도 이전이 아닌 축소된 규모의 행정도시 건설안을 내밀 수도 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헌을 하자고 제안할 수도 있다. 개헌이 안 된다 해도 논란을 통해 지지세력의 공고화를 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3의 구상도 여권 내에서 제기된다. 신행정수도 문제와 관련, 국민적 논쟁을 불러일으켜 2007년 대선까지 계속 이슈화하는 것이다. 장기전을 치르면서 충청권을 확고한 지지기반으로 확보해 두는 거다. 당장 내년 초 재.보선과 2006년 지자체 선거에서 덕을 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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