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공감대 확보 긴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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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미국의 부시 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정책이 강성으로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우리 정부의 대미 외교 대응 자세는 지나치게 느슨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은 며칠 전 방송에 출연해 "한.미.일 공조 아래 이뤄진 대북정책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 이라고 예상했고,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귀국한 양성철(梁性喆)주미 대사 역시 대북 포용정책에 변함이 없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梁대사는 최근 햇볕정책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는 발언까지 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 안보팀의 발언에 대해 "일희일비(一喜一悲)할 것 없다" 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안보팀의 발언 수준은 우리가 보기에 심상찮다. 부시 대통령 자신이 힘의 외교를 천명하면서 '미사일이나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는 위험한 국가' 를 지목했는데 그것이 어디를 겨냥한 것인지는 분명하다.

파월 국무장관이나 다른 안보팀도 물론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인정한다. 그러나 부시 안보팀이 보내고 있는 신호들은 대북정책을 한국의 입장에서만 봐줄는지 의문스럽게 한다.

그들의 의중은 아직 정확하게 표출되지 않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의 구축이나 대유럽 동맹 외교, 중국 및 러시아에 관한 외교정책의 방향 조정이 더 문제일 것이고 한반도 문제는 그와의 연관 하에서 이뤄질 게 분명하다.

이미 일본이나 대만은 미국의 NMD 계획이나 동북아 전역미사일방위(TMD)구상에 찬성하고 있다.

대북 포용정책의 추진을 위해 중국 및 러시아와도 선린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이 대단히 미묘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부시 안보팀은 클린턴 대북정책의 최대 결실이라 할 제네바 미.북 합의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하고 있고, 북한의 재래식 무기 감축 문제까지 들고 나오는 현실이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일방적인 대북 양보정책에 불만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미 외교팀이 그저 미국의 포용정책 평가라는 말 한마디에 매달리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대북 포용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대미 외교팀이 어느 정도 부시 안보팀과 긴밀한 접촉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그런 신뢰관계를 쌓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한.미 외무장관 회담이 2월 초로 예정돼 있고 정상회담도 곧 개최한다고 한다. 뚜렷한 사전 정지작업 없이 만났다가 부시 행정부의 강성 외교에 덤터기나 쓰게 되면 그 다음 정부가 취할 선택은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다.

때문에 정부는 민간부문을 포함해 대미 외교의 다양한 채널을 모두 동원해 한.미간에 공감대를 넓히는 노력을 심도있게 벌여야 할 것이며 국내에서도 대북정책의 기조를 정비하는 인적.제도적 개편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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