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에 아부 필요 없어 … 솔직·투명 경영이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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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에겐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블루칩 최고경영자(CEO)’ ‘성공한 낙하산 CEO’ ‘최장수 전문경영인’ 등….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1998년 7월 재정경제부 이사관에서 ‘낙하산’으로 당시 대한재보험(코리안리재보험의 전신)의 CEO가 됐다. 그런 그가 4연속 연임해 13년째 CEO를 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500대 기업 CEO 가운데 최장수다. 또 현직 대표이사로는 유일하게 10년 이상 CEO를 맡고 있다. 그는 오는 6월 주주총회에서 5연임에 도전한다. 5연임을 하면 그는 한 회사의 CEO로 15년 이상을 ‘장기 집권’하게 되는 셈이다.

500대 기업 CEO의 평균 재임 기간은 3.3년에 불과하다. 그는 코리안리의 대주주도 사주의 친척도 아니다. 전문경영인이다. 그런데 그가 다른 기업 CEO의 다섯 배가량을 재임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능력이 탁월한 것일까, 사주와 친해서일까. 이유를 듣기 위해 10일 서울 수송동 코리안리 본사 사무실을 찾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장수 CEO의 비결은 무엇인가.
“허허허. 가장 먼저 이런 질문을 받기는 처음이다. 부모가 아픈 자식을 잘 보살펴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했다면 그 자식에 애착이 간다. 기업도 그런 것 같다. 이 회사가 견실한 회사였으면 이렇게 오래 CEO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7월 부실 회사의 CEO로 와서 9월에 직원의 30% 이상을 구조조정했다. 아픈 데를 도려내고 체질 보강을 했다. 그렇게 해서 살린 회사라 애착이 간다. 원칙과 투명 경영을 기본으로 해서 주인 이상으로 나의 모든 것을 바쳐 회사를 살렸다.

-낙하산으로 왔다고 했는데 부임 당시 대주주가 좋아했나.
“그렇지 않았다. 처음엔 나보고 오지 말라고 했다.”

-사주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장수 CEO가 될 수 있었나.
“회사가 매년 12%가량 성장했다. 회사가 잘나갈 때는 선장을 바꿀 필요가 없지 않은가. 공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장수 CEO가) 가능했다고 본다. 처음 CEO가 됐을 때 코리안리 주가는 775원(액면가 500원 기준)이었지만 이제는 14배가 넘는 1만1400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직원 수는 282명에서 250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사주에게 신뢰를 얻는 비결이 있나.
“회장(사주) 입맛에 맞게 경영을 하지 않았다. 회사를 위해 솔직하고 투명하게 경영했다. 회장도 그런 것은 인정해줬다. (두 손바닥을 비비며) 회장에게 절대로 이렇게(아부) 하지 않았다. 회장의 주문이 있어도 그 자리에서 바로 ‘예스’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일단 검토해 보겠다’고 말한 뒤 타당성을 따져 보고서 답변했다. 나중에 회장이 그러더라. ‘예스맨은 믿을 수 없지 않은가. (박 사장의) 그런 측면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5연임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왜 그런가.
“실적이 뒷받침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도 꾸준히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이런 것을 직원도 알고 시장도 알고 있다. 회장은 평소에 ‘건강하면 계속 같이 가자’고 말한다.(웃음) 그만두는 날이 있더라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철학으로 살고 있다. 부실했던 회사가 점점 좋아지고 직원이 자부심을 갖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끝까지 간여한다. 신입사원을 스키장에 데려가기도 하고 점심식사를 같이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 회사의 실적과 영업정책 등을 자연스레 얘기해 준다.”

-신입사원 뽑는 방식이 독특하다.
“보통 경쟁률이 60~70대 1이다. 하지만 지원자가 자필로 쓴 원서를 방문접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지원자의 성의도 보기 위해서다. 일단 같은 대학 출신의 선배가 신입사원의 지원서류를 1차 평가한다. 그런 다음 사장, 인사담당 임원, 인사부장과 함께 노조위원장, 1년 차 직원 대표, 대리급 직원 대표가 1차 실내면접을 한다. 2차로 야외 면접을 한다. 지원자가 오전에 모여 청계산 등을 등반한다. 이때 지원자 4~5명이 1개 조를 구성하고 코리안리 직원 2명이 동행해 평가한다. 등반 이후에도 축구시합, 오래 달리기 등을 통해 근성과 끈기를 본다.”

-직원을 뽑고 난 뒤 만족도는
“일단 뽑은 직원에 대해 불만족스럽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다양한 평가 과정을 거치니 코리안리 직원 50여 명이 선발에 관여한다. 50여 명의 눈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편차가 크지 않다.”

-다시 ‘장수’ 얘기를 해야겠다. 친구나 동기 공무원 가운데 현직에 있는 사람은 많나.
“거의 없다.”

-전문경영인으로서 최장수 CEO의 의미를 말한다면.
“세 가지 정도다. 우선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으면 더 잘되더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또 CEO에게는 수십 년 CEO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그리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의미가 있다.”

-네 차례 연임하면서 연임 안 될까 불안감을 느낀 적이 있나.
“소신껏 모든 것을 걸고 일했기 때문에 언제든 연임이 안 돼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다. 연임과 관련해 조바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경영은 자율적으로 했나.
“지금까지 경영을 하면서 소신을 굽혀본 적이 없다. 가끔 인사할 때 외부 청탁이 들어온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럴 때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원칙에 따라 적합하게 인사했다. 회장도 인사에 간여하지 않는다.”

-스키를 즐긴다는데.
“보통 12월 말부터 2월 말까지 매주 스키장에 간다. 25년 전 아이들과 스키장에 가서 처음 스키를 배웠다. 한 단계, 한 단계 기술을 연마해 가는데 반했다. 한 번 무엇을 하면 몰두하는 성격이라 즐기게 된 것 같다.”(그는 매년 신입사원을 뽑으면 신입사원 연수 과정으로 이들을 스키장에 데려가 스키를 타게 한다.)

-경영계획은.
“유동성(1조1000억원)이 풍부한 데다 조만간 금융사 간 칸막이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재보험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해외로 진출할 계획이다. 생명보험에도 진출하고 저축은행 인수도 고려하겠다. 다만 이것을 당장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좋은 매물이 나오면 그때 하겠다는 것이다.”


박종원 사장은
1944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숭실고와 연세대 법학과를 나와 행정고시(14회)에 합격했다. 재무부 결산관리 과장, 총무과장, 재정경제부 공보관을 역임했다. 98년 7월부터 코리안리 사장을 맡았으며 3년 임기 CEO에 4연속 연임됐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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