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 뚜껑에 납세도장 찍는 나라는 한국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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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술 산업의 진입 규제를 비판적으로 해부한 논문이 9일 서울대에서 열린 ‘2010 경제학 공동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김진국 배재대 국제학부 교수는 ‘주류산업 진입규제의 경제적 타당성 분석’이란 글에서 주류 제조업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규제가 기존 업체를 과잉보호하고 술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1998년 ‘주류 제조분야 규제는 풀고 주류 유통은 효율적으로 통제한다’는 목표 아래 규제개혁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아직 미흡한 상황이라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해방 후 현재까지 ‘세원의 안정적 확보’라는 측면에서 주류 제조업 규제를 광범위하고 강도 높게 실시해 왔고, 농업정책과 연계해 원료사용 규제도 병행해 왔다”며 “과도한 진입규제로 전통 주류가 사라지고 국가대표 주종이 없어졌다”고 비판했다. 술 산업 정책이 주세 수입 확보와 탈세 방지에 최우선 순위를 두다 보니 결국 주세관련법이 주류산업을 지배하는 기형적인 구조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규제 일변도의 산업정책은 시장경제 원리가 배제된 왜곡된 구조를 만들었다”며 “소비자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제한된 주류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술 산업 진입규제와 김 교수의 비판 요지.

◆병마개도 경쟁 제한=세원확보 차원에서 국내에서 생산되는 주류에는 납세병마개를 사용하게 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주세정책이다. 모든 병마개 제조는 국세청이 지정한 업체만 만들 수 있다. 현재 2개 업체만 있다. 병마개 생산에 하이테크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일정 시설만 갖추면 누구나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데도 시설요건을 과도하게 요구하고 있다. 탈세 방지를 위해서라지만 자동계수기 등을 통해 수량관리를 할 수 있는 만큼 납세병마개를 고수할 명분은 없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 지정업체를 2개에서 3개로 늘리기로 했지만 이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경쟁을 촉진해야 할 공정위가 국세청과 타협을 해버렸다.

◆제조·판매 면허로 통제=주류 제조는 국민 보건과 재정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면허제나 전매제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한국은 필요 이상의 생산시설 기준 등을 두고 있다. 대규모 생산자에겐 부담이 안 되지만 민속주·농민주 등을 만드는 소규모 사업자에게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또 미국·영국 등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주류 도매업 면허를 강력하게 통제하고 소매업이나 유흥음식업소 등의 소매업 면허는 상당히 풀어놨다. 사실상 정부가 음주를 권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신 판매도 규제하고 있다. 현재 주류 통신판매는 민속주·농민주만 가능하다. 국민건강과 청소년 보호를 위해 주류는 대면(對面) 판매가 원칙이지만 수입 와인·수입 맥주 등 도수가 낮은 술의 통신판매는 허용해야 한다.

◆주정 독점, 정부가 보호=각 제조사가 주정(술의 주원료)을 만들면 모두 대한주정판매㈜에 판매하고, 이곳에서만 주정을 구입하게 돼 있다. 주정도매업은 면허제지만 현재 대한주정판매만 면허가 있다. 시설기준이 너무 까다로워 시장 진입이 어렵다. 정부가 대한주정판매의 독점을 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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