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작명 잘해야 경기 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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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병기 경제부 기자

"기업과 국민의 경제 심리가 상당히 가라앉은 모습입니다. 이제는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할 때입니다.…정부는 내년부터 새로운 투자와 합리적인 소비 수요를 자극할 수 있는 사업들을 발굴해 하나의 '종합플랜'으로 묶어 추진하겠습니다."

재정경제부 홈페이지(www.mofe.go.kr)에는 며칠 전부터 눈길을 끄는 공고문 하나가 게시됐다.

정부가 1930년대 대공황을 벗어나게 한 미국의 뉴딜정책을 본받아 기업과 국민의 경제 심리를 되살려낼 수 있는 새로운 경제 도약 프로그램을 추진하려 하니 여기에 붙일 이름을 공모한다는 내용이다.

국민 모두가 경제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메시지가 담긴 그럴 듯한 이름을 찾는다는 설명과 함께 '뉴딜정책''마셜플랜''다산플랜''다이내믹 코리아''리세이핑 코리아' 등의 예까지 친절하게 곁들였다.

그동안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5%대의 경제성장은 문제없고 조만간 내수가 회복될 것"이라고 공언해 왔던 재경부의 자신감 넘쳤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다.

경기부양대책이라는 말을 안 썼을 뿐 '내년에도 경기가 도저히 살아날 조짐이 없으니 경기활성화 대책을 본격적으로 펼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를 위해 국민의 경제 심리를 북돋울 수 있는 '참한' 이름을 먼저 정한 뒤 앞으로 여기에 맞는 정책들을 하나씩 채워나가겠다는 게 재경부의 생각인 모양이다.

캠페인으로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온 국민이 나서서 이름 짓기에 골몰할 일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책 복안도 없이 덜렁 이름부터 공모하는 것은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 같다.

문민정부 시절의 '신(新)경제 100일 프로젝트'나 국민의 정부 때의 '제2의 건국운동' 에 이르기까지 거창한 이름의 캠페인성 정책이 성공한 적은 없다.

더구나 현재의 경기 침체를 인정하지 않고,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도 않으며, 해결책도 없는 정부가 경기대책의 이름 짓기에 나선 것을 두고 시민들은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홍병기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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