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불법업소 등 단속 '몸사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지난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로데오거리. 어지럽게 걸려있는 여러 종류의 간판들이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을 번쩍거리고 있다. 화려한 모습이지만 사실 이 거리는 '불법 천국' 이다.

입간판은 길을 막기 일쑤고 법을 무시한 채 건물 외벽을 반쯤 뒤덮은 간판들도 허다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강남구 전체 간판 세개중 한개는 불법이다.

그러나 단속을 해야할 구청은 팔짱만 끼고 있다. 상반기 강남구에선 1만1천8백여개의 불법간판이 적발됐지만 과태료 부과는 21건에 그쳤다.

이처럼 전국의 기초자치단체들이 주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거리질서를 바로잡거나 청소년 유해업소를 단속하는데 거의 손을 놓고있다.

지난 7월 서울에서 적발된 벽보.전단 등 광고물의 불법 사례는 87만여건이었으나 구청에서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고발한 것은 0.03%에 불과했다.

종로구의 경우 1월~8월 3천3백여명을 동원해 청소년 유해행위 단속을 벌였다. 그러나 단 한건만 행정처분을 받았다. 용산.성북.구로구 등의 단속실적도 20건을 넘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과태료와 범칙금을 인상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해도 구청장들의 몸사리기가 고쳐지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다" 고 털어놨다.

그는 "행정처분 계획을 보고하면 구청장이 오히려 질책한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다" 고 말했다.

부산에서는 6월까지 청소년보호법 위반 사범 2천6백57건에 87억9천7백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실제 징수 건수는 7백1건에 10억5천5백70만원에 불과하다. 업주들의 눈치를 보느라 징수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대전 동구는 상반기 동안 노래연습장과 게임장 등 1백36개 업소에 대해 청소년 유해행위 단속을 실시했으나 단 한건의 위법 사항도 적발하지 못했다.

이에따라 구청간 교차단속 또는 시민단체 회원을 포함한 합동단속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구청들이 자기 관내 업소를 봐준다는 인식을 없애기 위해 방학이나 연말에는 시청과 5개구청 합동으로 불법영업 단속에 나설 계획" 이라고 말했다.

강진권.홍권삼.천창환.김영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