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동안의 귀향] 上. 전복에 송이버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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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4후퇴 때 원산에서 단신으로 월남한 분단시대 대표작가 이호철(李浩哲.68)씨. 이번 남측 이산가족들의 평양 방문에 동행해 50년만에 여동생을 만났다. 또 애끊는 혈육상봉의 장면 장면들을 목격했다. 작가의 눈과 마음 속에 담긴 그 감격과 회한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이번 방북 길은 1998년에 이어 두 번째였다. 2년 전 그때는 평양과 백두산.묘향산 등을 다니며 총 9박10일이나 체류해, 비록 직접 상면하지는 못했지만 재북(在北) 친족들의 기본 정황은 대강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그때 안내했던 분들의 뜨거운 배려로 누이동생과 매제의 사진 및 편지까지도 서울로 돌아온 뒤 인편을 통해 받아보았었고, 그렇게 조부님과 부모님, 두 누님 등 손윗 분들은 죄다 세상을 떠났고, 나와 네살 터울인 남동생과 열살 아래인 여동생만 살아 있다는 것까지 알았던 터였다.

그나마 남동생도 중풍을 맞아 병환 중이어서, 내가 고향을 떠날 때의 친족으로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건 누이동생 하나뿐이었다.

항용 사람 산다는 것이 그렇지만, 전혀 소식이 캄캄했을 때보다 이렇듯 쬐깨 소식을 알아 놓으니까, 더더욱 안달이 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안달을 한들 별 뾰족한 수가 있을 리는 없었다. 그렇게 2년이 또 후딱 지나 지난 6월에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만난 뒤 남북관계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 급류를 타게 되면서 비로소 나도, 이제 그 어려운 두 번째 방북 길을, 이 땅에서 수십년간 글을 써온 한 작가로서, 적십자사 자문위원 자격의 지원인원의 한 사람으로, 역사적인 그 8.15 이산가족 '만남' 의 현장에 동참하게 됐던 것이다.

8월 14일 오후에 1백51명 전원이 일단 서울 워커힐호텔 한 자리에 모이는 것으로부터 3박4일의 이번 방북 길은 시작됐다. 소정의 절차를 마치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였다.

장충식 단장 이하 적십자측 지원인원을 포함한 전원이 큰 홀에서 처음으로 합류를 했는데, 당연히 나도 18명씩 둘러앉은 대형 원탁 하나에 끼여 앉아 있었다.

그때 빙 둘러보면서 우선 첫 인상으로 강하게 꼬나박혀 온 것은 '80, 90대 노인들이 너무 많구나' 였다.

이미 신문지상으로 보았지만, 이번에 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속에는 김일성대학교수다, 계관시인이다, 화가다, 언어학자다, 어엿한 유명인이 즐비했는데, 이쪽은 1백명 가운데 그런 유명인은 단 한 사람도 끼여 있지 않았다.

그 점이 꽤 어색하게 느껴지고, 이 남쪽이 처음부터 뭔지 한 풀 꺾이고 꿀리는 것처럼 여겼다. 꼭 어느 쪽이 낫다, 못하다 하는 체제경쟁 차원에서보다는, 이건 지나치게 균형이 안 맞는 것이 아닌가 하고. 적십자 직원 한 분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그런 유명인사 쪽으로 억지로 찾으려 든다면 퇴역 중령 한 사람은 끼여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뭐요? 퇴역중령! 나는 어이가 없어 멍하니 상대를 마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자 상대는 이 점은 대통령께서 특별히 역점을 두어 지시를 한 사항이라고 했다. 컴퓨터를 통한 7백70대 1의 제비뽑기에 결코 '예외' 경우를 두지 말라는 것….

꼭 대통령의 특별지시였대서가 아니라, 3박4일의 이번 방북 길에서 내가 강하게 절감한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약 7만7천명의 신청자를 단 한 건의 예외도 없이 전원 컴퓨터 추첨으로 뽑았다는 이 점! 이러기를 잘 했다, 썩 잘 했다!고 나는 평양으로 들어가서도 수없이 혼자 되뇌었던 것이다.

워커힐 첫 회식자리에서 빙 둘러 보면서 첫 인상으로 와 닿았던 그 불균형감은 내 쪽의 기우였음이 절감됐다.

심지어 휠체어를 탄 할머니에, 언청이 할아버지에, 중풍을 맞아선가 입 한쪽이 비뚤어진 노인, 그밖에도 어슷비슷하게 명실공히 이 땅의 대표적인 서민들이어서, 그 점이 비록 첫 한 순간에는 조금 어색하게도 여겼지만, 이 분들과 3박4일간의 방북 여정을 같이하면서 이 점이 가장 훈훈하고 그 이상 마음 든든할 수 없었다.

특히 이 분들을 안내하는 북한 안내원들의 하나같이 지극하고 자상하며 성실한 모습도 그 이상 흐뭇할 수 없었다.

나는 작금의 남북관계를 두고 소위 '체제경쟁' 이라는 용어나 발상을 가장 혐오하고 있거니와, 하지만 이번 첫 교환방문에서 남북 제각기 뽑힌 면면들을 두고 본다면, 이번 우리 측의 면면은 북한 당국으로서도 '반면교사' 로서의 뜻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방북 전날 워커힐 회식에서도 원탁테이블의 내 맞은 편 자리에 앉았던 80대 노인 한 분이, "암튼 사람은 오래 살구 보아야 한당이. 오래 살다 보잉까, 아, 이런 희한한 일도 생기지 않는가요. 살다가서리, 이런 횡재가 어디 또 있겠소.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야, 누가 짐작인들 했겠수까. 아, 비싼 전복에 해삼에 자연생 송이버섯에다가" 하자, 한 자리에 앉았던 할머니 한 분도 "난 이 귀한 전복을 몇 십년 만에 먹어 보누만요잉" 하고, 호물때기 입을 오무작오무작거리고 있었다.

<소설가.경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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