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반국가사범 몰려 삼청교육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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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충주 문화방송의 유호 전 사장은 1980년 8월 9일, 영문도 모른 채 충주경찰서로 연행됐다. 그러곤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 지옥 같은 3주. 그는 ‘524번’으로 불리며 고초를 겪었다. 그는 석방된 뒤에야 자신이 교육대에 끌려간 이유를 알았다. 언론통폐합 과정에서 반국가 사범으로 몰려 해직됐던 것이다. 유씨는 2007년 사망했다. 

‘대량 해직과 가정파탄, 삼청교육대 입소….’ 진실화해위원회는 7일 “언론통폐합 조치로 언론인에게도 무차별 테러가 가해졌다”고 밝혔다. 언론장악을 위한 밥줄 끊기가 대표적이었다. 1000여 명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당시 전북신문에서 나온 기자 전모씨는 “아이가 초등생이었다. 취업길이 막막해 다방에서 차 끓이는 ‘쿠쿠(주방일)’ 생활을 3년 했다”고 말했다. 문화방송의 주모 기자는 회사에서 쫓겨난 뒤 생계가 막막해져 가정불화에 시달리다 끝내 아내와 이혼했다. 그는 “한참 일할 나이에 8~9년간 반국가 사범으로 손가락질받으며 세 살과 6개월짜리 아들을 혼자 키워야 했다”고 말했다.

당시 신군부는 반정부 성향 정도에 따라 4개 등급으로 해직기자 명단을 작성했다. 이들을 ‘정화 대상 언론인’으로 부르며 취업을 못 하게 막았다. 비위를 저지른 공직자의 취업제한 기준을 언론인에게 들이대 관계기관이나 국영업체·정부 투자단체 등엔 취업이 원천 봉쇄됐다. 해직 사유로 ‘무능, 부정, 반국가 성향’을 들먹여 사회적 냉대를 받게 하는 등 심리적 테러도 가했다. 당시 정보수집관이었던 한 인사는 진실화해위의 조사 과정에서 “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의 정권에 대한 저항 기질을 분석한 뒤 명단을 만들어 상부에 보고했다”며 “이들은 무능하거나 부정해서가 아니라 반정권 성향이 있다는 이유로 명단에 포함됐다”고 말했다.

1980년 12월 1일 TBC 등 통폐합 방송사 기자들이 KBS 측으로부터 인사 발령 발표를 듣고 있다. 이들이 모인 곳은 당시 TBC 여의도 스튜디오였다. [중앙포토]


삼청교육대 같은 강압과 위력도 빠지지 않았다. 부산일보 출신 해직기자 이모씨는 “이유도 모른 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25일간 잠 한숨 못 자고 앉아서 조사받았다”며 “너무 괴로워 ‘돈 5만원을 받은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대구에 있는 라디오방송인 한국 FM에서 일했던 해직기자의 부인은 진실화해위의 조사에서 “남편이 보안부대에 다녀온 뒤 대인기피증과 공포증에 시달리며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며 “결국 해직 두 달 만에 간질환으로 입원한 뒤 1998년까지 10차례 수술을 받는 등 투병생활을 하다 사망했다”고 진술했다.

◆언론사도 재산 피해=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신아일보가 통폐합되면서 지급받은 돈은 4억원이다. 총자산이 14억원에 달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신군부는 ‘장비 등 기자재 가격으로 통폐합을 추진한다’는 계획 아래 사전에 정한 인수액을 수용하라고 언론사에 강요했다. 총칼을 찬 군인이 동석한 가운데 포기각서를 써야 했던 언론사주들은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주식을 강제로 헌납한 사례도 있다. MBC의 주식을 갖고 있던 대한교육보험 등은 보유 주식을 문화공보부에 기부하는 서류를 제출했다. 물론 대가는 없었다. 이런 강탈에 대해 신군부는 언론사가 원해서 통폐합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홍보했다. 진실화해위는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를 은폐한 셈”이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통폐합 대상이 된 언론사는 재산상의 피해뿐 아니라 사회적 불명예와 불신이라는 회복하기 힘든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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