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행동이 세계를 움직이는 시대, 매니페스토가 승자 결정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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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호 22면

6월 2일 실시되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과거에 실시되었던 어떤 선거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방 자치를 위해 1991년 지방의원 선거가 실시된 지 어언 20년이 지났으며 그동안 4차에 걸친 지방선거를 통하여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를 어느 정도 정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기고 6·2 지방선거에 바란다

이번 지방선거는 서울특별시장을 비롯한 16개 광역자치단체장, 기초자치단체장, 광역 및 기초의원, 교육감과 교육위원 등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끌어 나갈 수천 명의 지역일꾼을 선출하는 가장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은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많은 관심을 두었지 지방선거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21세기는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을 요망하고 있다. 21세기 초기에 우리는 "사고는 세계적으로, 행동은 지방적으로(Thinking Globally, Acting Locally)"라면서 세계화와 지방화를 강조하는 세방화(Glocalization) 시대를 논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방화를 뛰어 넘은 지세화(Loc-balization) 시대다.

지세화 시대는 지방화(Localization)와 세계화(Globalization)의 합성어다. 2002년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지속가능발전 세계정상회의(World Summit on Sustainable Development)"의 지방정부 선언에서 발표된 표어 ‘지방 행동이 세계를 움직인다(Local Action Moves the World)’처럼 지역사회가 한 국가의 정치·사회발전의 주체가 되는 시대를 의미한다.

이런 지세화 시대에 있어 지방선거가 주는 의미는 대단하다. 지방선거에서 어떠한 지역 일꾼들이 선출되느냐에 따라 지역사회 발전의 양과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금권·지연·학연·혈연에 흔들리지 않고 지세화 시대를 이끌 참다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은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국가 발전에 중요한 전기가 되는 것이다.

특히 금년 선거에는 2006년 지방선거에 처음 도입됐던 매니페스토(manifesto·구체적인 예산과 추진 일정을 갖춘 선거 공약)가 다시 적용된다. 이번 지방 선거는 매니페스토 선거의 정착 여부와 선거 문화가 정책 경쟁으로 변화하면서 한국정치가 선진화할지 여부를 가름할 것이다.

매니페스토는 유권자를 현혹시키는 허황된 공약이 아닌 실천가능한 구체적인 예산이나 시기가 명기된 ‘참 공약’을 의미한다. 민주정치의 기초인 지방자치가 발달되고 선진 선거문화가 정착된 영국에서 매니페스토는 이미 1830년대부터 적용됐다. 일본에서는 2003년 지방선거에서 도입, 정착되었다.

일본에서는 지방선거 때 단체장의 매니페스토 공약은 필수다. 임기 후 재선에 도전할 때도 귀중한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2003년 가나가와현 지방선거에서 로컬 매니페스토(Local Manifesto)를 내세워 당선된 마쓰자와 지사가 매니페스토를 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높은 평가를 받아 2007년 선거에서는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된 것이 좋은 사례다.

일본 지방선거에서 매니페스토는 정치에 대한 신뢰와 책임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유권자의 인식은 지난해 8월 일본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집권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2003년부터 매니페스토에 의한 선거공약 제시에 부단한 노력을 했고 이것이 결국 민주당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로 발전해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다.

필자가 지난달 중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서점에서 '민주당 매니페스토' 코너가 별도로 신설된 것을 보았다. 필자와 만난 일본의 정치인들은 "앞으로 매니페스토는 일본 유권자의 선택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에 패배한 자민당은 이번 선거를 거울 삼아 매니페스토 작성을 위한 당내 기구를 상설화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매니페스토 운동은 도입기를 지나 정착기에 들어서고 있다. 6월 지방선거에서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할 때 매니페스토가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다면 선거 문화를 바꿔 놓을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와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각 정당과 후보자가 작성, 발표하는 매니페스토는 한국의 선진화된 선거 문화 정착에 중요한 이정표를 만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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