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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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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저 가득 우거진 풀을 헤치고 찾아 나선다/ 물 넓고 산 멀어 길은 깊어가고….” 소를 찾는 목동의 이야기다. 잃어버린 소를 찾아 길을 나선 목동이 깊은 숲 속에서 헤매는 상황이다.

이른바 ‘소 찾아 나서기’를 주제로 그린 ‘심우도(尋牛圖)’의 첫 장면. 불가(佛家)에서 대중을 일깨우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목동은 수행자를 일컫고, 소는 인간의 본성(本性)이다. 소는 이를테면 진정한 자아, 망념과 집착을 버린 청정심(淸淨心)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소가 주는 이미지는 안정성이다. 이리저리 날뛰는 말(馬), 잠시도 의심을 멈추지 않는 원숭이(猿)와는 대조적이다. 우둔한 것 같지만 한 군데로 쏠리지 않는 심성, 깨끗하면서 본체를 잃지 않는 마음 상태를 상징한다.

그림 심우도의 전개는 이렇다. 막막한 숲 속에서 헤매다가, 그 자취를 처음 보고(見跡), 소를 발견해(見牛) 집으로 돌아온다. 결국에는 내 마음속의 참 나인 소를 얻어 아무런 집착이 없는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얘기다.

깨끗하고 티 없는 마음의 세계, 본래의 나를 발견해 깨치는 일이 진리의 요체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뜻이다. 풍수에서도 소가 누워 잠을 잔다는 ‘우면(牛眠)’의 지형(地形)이 길지(吉地) 중의 으뜸으로 꼽힌다. 무거운 짐을 진 채로 느리지만 먼 길을 간다는 뜻의 ‘부중치원(負重致遠)’이라는 성어의 주체도 역시 소다.

독립의 뜻을 항상 가슴에 품고 뜨거운 민족의식으로 일관했던 만해 한용운(韓龍雲) 선생이 서울에 머물렀던 곳의 당호(堂號)도 ‘심우장(尋牛莊)’이다. 선생의 삶 그 자체가 중심을 놓지 않고 우뚝 서 있는 소의 이미지다.

기축(己丑)년 소의 해가 저문다. 한국 사회의 저물녘 풍경은 소의 해 답지 않다. 정쟁(政爭)이 끊이지 않았고 사회 곳곳에서는 온갖 다툼이 멎지를 않았다. 올해의 사자성어가 오죽했으면 ‘그릇된 수단과 억지’라는 뜻의 방기곡경(旁岐曲逕)이었을까. 청정하고 순수한 마음의 소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멀다.

한국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이 모두 순박하면서도 깨끗한 마음 상태를 얻는 것은 그들의 수준으로 볼 때는 아직 과도한 기대일까. 그래도 소를 찾아 나서기 바란다. 바뀌는 해와 상관없이 내년에는 심우의 여정을 시작해 볼 일이다. 막막한 수풀 사이로 난 조그만 길을 따라서.

유광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