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한국 첫 인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러시아 오페라에서 알렉산드르 푸슈킨(1799~1837)을 빼놓으면 별로 할 얘기가 없다.

그가 쓴 시.희곡.소설은 가곡.합창.칸타타는 물론 많은 오페라로 재탄생했다.

다르미고츠키의 '루살카' '석상(石像)의 손님' , 글링카의 '루슬란과 루드밀라' ,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 라흐마니노프의 '알레코' '불쌍한 기사' , 차이코프스키의 '예프게니 오네긴' '마제파' ,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술탄 황제의 이야기' '황금닭'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

1890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된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원제 피코바야 다마)' 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러시아가 낳은 두 거장 푸슈킨.차이코프스키가 만나 이룩한 위대한 예술적 성취다.

제목에서 눈치챘겠지만 이 작품에는 도박판이 등장한다. 카드 게임으로 일확천금해 잃어버린 사랑(리자)을 되찾겠다고 나선 청년 장교 허만은 도박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리자는 한때 '스페이드의 여왕' 으로 도박판을 휩쓸던 백작부인의 손녀딸. 허만은 밤중에 백작부인의 침실로 숨어 들어가 카드 게임에서 이기는 비밀을 알아낸다.

사랑하는 남자를 도박판에 빼앗긴 리자는 운하에 몸을 던지고 도박에서 참패한 허만은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고 만다.

사랑과 부(富), 도박판의 생리가 서로 겹치면서 죽음이라는 운명적인 결말로 이끌어간다.

낭만적 서정성과 함께 내면 심리묘사가 뛰어난 차이코프스키의 걸작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이 처음으로 국내 무대에 오른다.

한.러수교 10주년 기념으로 모스크바 볼쇼이 오페라단이 오는 8월 25~2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이 작품을 상연하는 것.

주역가수는 물론 마르크 에름레르가 지휘하는 볼쇼이 오페라 오케스트라.합창단과 무용단 등 2백84명의 단원들이 내한공연에 참가한다.

볼쇼이 오페라단은 1989년 첫 내한공연에서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를 국내 초연한 바 있다.

이번 공연도 '라 트라비아타' '카르멘' '라보엠' 등 흥행성 높은 스탠더드 레퍼토리가 아니라 한국 오페라 공연사에 큰 획을 긋는 무대이기에 더욱 관심을 끈다.

프리마돈나 리자 역에 소프라노 마리아 가브릴로바.이리나 루브소바, 허만 역에 테너 비탈리 타라스첸코.리브 쿠즈네트소프를 더블 캐스팅하는 등 신예와 중견 성악가를 안배했다.

이 작품은 차이코프스키가 "내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이 작품은 나의 최고 걸작이 될 것" 이라고 장담했던 오페라. 교향곡 '비창' 의 제목을 정하는 데도 도움을 줬던 작곡자의 동생 모데스트가 대본을 맡았고 차이코프스키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44일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시대적 배경은 카테리나 대제(1762~96년 재위)당시의 러시아. 가발과 궁정의상이 등장하고 가면무도회 장면을 삽입하는 등 화려한 무대와 의상을 강조하기 위해 푸슈킨 원작보다 1백년 앞당겼다.

19세기에서 18세기, 차이코프스키가 좋아하는 모차르트의 시대로 옮긴 것.

교향곡.무용음악 등 관현악곡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편곡이 일품인 '로코코풍의 멜로드라마' 이지만 군데군데 러시아 민요가 등장해 민족주의적 색채도 엿보인다.

차이코프스키의 '운명 교향곡' 으로 불리는 교향곡 제5, 6번 사이에 작곡된 탓인지 이 곡의 주제도 '운명' 이다.

02-3701-5757.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