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회 ‘과잉행동장애’ 어찌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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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호 02면

소아정신과를 찾는 아이들의 상당수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의 경우 부모든, 선생이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게 특징이다. 조심성과 주의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수도 자주 한다. 종종 공격적인 언동으로 또래 아이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싸움판도 벌인다. 작은 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부모의 걱정은 태산이라고 한다.

ADHD 아동의 문제를 떠올린 건 우리 국회의 자화상과 닮았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금 부끄러운 역사의 기록을 남기려 하고 있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하지 못하는, 그래서 국가 기능이 마비되고, 서민이 고통받는 중대한 사태를 일으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의 살림과 서민 대중의 삶을 지탱하는 예산안을 심의하고 의결해야 할 국회 예산결산특위 회의장은 민주당 의원 농성장으로 변해 있다. 민주당은 4대 강 사업 예산을 싹둑 잘라내기 전에는 예산안 심의를 하지 않겠다며 회의장을 점거했다. 26일로 10일째다.

민주당이 전체 예산의 1. 2%에 불과한 4대 강 사업 예산을 볼모로 국회 기능을 정지시킨 건 4대 강 정비를 대운하의 기초를 닦는 일이라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그걸 해소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4대 강 정비는 국책사업이므로 관련 예산은 한 푼도 깎을 수 없다”고 버텼고, 청와대는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3자회동 제안을 거부했다.

최근 미국 상원을 통과한 건강보험 개혁법안과 관련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야당인 공화당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는 모습 같은 건 청와대에선 볼 수 없었다. 상원에서 민주당을 이끄는 해리 리드 원내대표는 당내 반대파의 표를 얻기 위해 법안의 핵심 중 하나인 공영보험(Public Option)도입을 포기하는 통 큰 결단을 했다. 한국의 여당 원내대표에게선 이런 유연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미국은 대통령과 원내대표의 협상 노력과 양보로 골칫덩어리였던 건강보험 문제를 반세기 만에 고치는 길을 개척했다.

반면 한국의 정치권은 국민을 괴롭히는 길을 열려 하고 있다.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상대방 입장은 무시한 채 바로 화를 내는 과잉행동 장애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31일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해 준예산이 편성되면 누구보다도 서민 대중이 타격받게 된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민주당은 모두 서민의 편이라고 선전하지 않았었나. 양측은 서민의 삶을 자기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동냥은 못할망정 쪽박을 깰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양보와 타협의 문을 열고, 민주당은 여권의 진성성을 믿어 보라. 그러지 못하고 남은 닷새를 허송세월한다면 서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지 모른다. 그땐 정치권이 각오해야 한다. 준예산 사태가 발생할 경우 여야 지도부는 사퇴해야 한다. 그리고 월급을 받지 말아야 사람은 공무원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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