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지하철서 애정표현 나무라니 오히려 욕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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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가다 기막힌 광경을 목격했다. 내가 앉은 곳 맞은 편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남학생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주위에 나이가 든 분들이 많은데도 이들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입에 넣었던 과자를 꺼내 서로에게 먹여주고 부둥켜 안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입을 맞추기까지 해 보는 이들이 모두 경악했다.

내 옆자리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시면서 "누구집 딸인지 집안 교육 제대로 받아야 하겠구먼…" 이라며 혼잣말을 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이들에게 다가가 "학생들, 연세 많으신 어른들 앞에서 이런 모습 보여야겠어. 모두 보고 계시니까 그러지 마" 라고 충고했다.

그러자 여학생이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는데 등 뒤에서 남학생이 내게 온갖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견딜 수가 없어 목적지에 가기 전 전동차에서 내려버렸다. 그랬더니 그들도 나를 따라 지하철에서 내렸다.

덜컥 겁이 나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해 역을 벗어나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귀가하면서 '우리 사회의 도덕률이 무너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최정자 <인터넷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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