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석유 소비량 세계 7위인데, 확보한 건 전체 매장량 0.09%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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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22면

“해외 자원 개발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투자해 열매를 얻으려면 10년쯤은 생각해야 합니다.”이명박 정부 들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자원 외교를 실무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김은석(51·사진) 국무총리실 외교안보정책관의 얘기다. 김 정책관은 ‘자원 총리’를 자임한 한승수 전 총리의 자원 외교를 뒷받침했다.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이 8월 가나·콩고(DRC) 등 아프리카 지역을 방문했을 때 동행하며 박 차장의 자원 외교를 지원했다. 외무고시(14회) 출신인 김 정책관은 외교통상부 소속이나 자원 외교를 지휘하는 총리실에 파견돼 실무업무를 맡고 있다.

김은석 국무총리실 외교안보정책관

-해외 자원 개발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무엇이 어렵나.
“개발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지만 MOU를 체결한 이후에는 탐사 계약→개발 계약→생산물 분배 계약 등의 단계를 밟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금이 들어가고 시간이 걸린다. 이 산들을 다 넘어야 자원을 가져올 수 있다. 땅 속에 묻혀 있는 것이라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세계에서 유명한 자원 개발 회사들도 손해를 많이 봤다. 그래서 자원보유국의 사정을 잘 알고 시작해야 한다. 자원 개발까지의 시간을 줄이려면 인수합병(M&A)을 해야 하지만 이 경우 비용이 더 든다.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병행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자원 확보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석유공사는 세계에서 생산·투자 규모에서 95위권이고 광물자원공사는 110위권이다.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석유는 전 세계 매장량의 0.09%에 불과하다. 사용하는 석유량은 세계 7위인데 말이다. 해외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공사의 덩치가 커야 하는데 현재의 크기로는 외국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선진국은 물론 말레이시아 회사에도 밀리는 경우가 있다. 석유공사나 광물자원공사의 덩치를 키워야 한다. 단기간에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운영권을 갖고 있는 석유 기업을 인수하는 문제도 검토할 만하다. 석유공사에 대해선 2012년까지 19조원을 증자한다는 계획을 정부는 세워놓고 있다.”

-석유공사가 적극적으로 석유 자원 개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공사 체제이다 보니 결과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감사도 받아야 하므로 조심스럽게 처신하는 거다. 석유공사의 규모가 커지고 자생 능력이 생기면 민영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공기업 자원 개발 펀드 추진은 어떻게 되나.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필요한 막대한 투자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민간 자금 등 다양한 투자재원의 확보가 시급하다. 그런 맥락에서 전문성을 갖춘 공기업의 선도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는 석유공사의 투자금액(1000억원)과 광물자원공사의 투자금액(100억원)을 종잣돈(seed money)으로 민간 투자자금을 확보해 총 1조원 내외의 펀드를 만들 계획이다. 자금이 모아지면 전문성을 갖춘 2개 운용사를 선정해 2개의 분할 펀드를 조성할 것이다. 투자자들에게는 세제 혜택도 주고 투자 위험에 대한 보증도 할 것이다.”

-중국과의 경쟁은 어떤가.
“중국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중국은 일종의 국가 자본주의를 하는 나라다. 해외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엄청난 물량공세를 하고 있다. 올해 석유공사는 스위스의 석유기업인 아닥스 페트롤리엄을 인수하려 했으나 중국 측과의 금액 싸움에서 밀려 실패했다. 우리는 큰 돈을 마련하기가 너무 힘들다. 아닥스 건의 경우 우리는 자금을 모으는 데 15개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려다 보니 쌈짓돈 모으듯 했다. 반면 중국은 한 군데에서 우리보다 훨씬 싼 이자율로 돈을 빌렸다.”

-우리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너무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면 협상 대상국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나.
“요즘의 자원 외교는 자원을 가진 나라에 인프라를 구축해 주거나, 그런 나라와 함께 자원을 개발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이것도 기본적으로 비즈니스 거래다. 손해가 가는 장사는 안 한다. 대개 민간 기업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업성이 있으니 계약을 하는 거다.”

-바람직한 자원 외교 모델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자원 협상을 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후진국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경제 성장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이다. 이런 일을 한국만큼 잘하는 나라는 없다고 생각한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나라에 대해 아프리카 국가를 비롯한 후진국이 정서적인 동질성을 느끼며, 고도성장한 우리를 그들의 발전 모델로 삼고 싶어 한다. 우리의 강점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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