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잘못된 ‘민주화’ 판정, 재심할 수 있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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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민주화운동’ 재심 법안이 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됐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폭행까지 당해가면서 제출한 지 284일 만이다. 2000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수많은 사건들이 재해석됐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결정들 중에는 사실을 왜곡했다는 논란도 적지 않았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바로잡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을 열어두는 것이 옳다.

현행법에도 재심(再審) 절차가 있지만 사실상 어렵게 돼 있다.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사람은 민주화 유공자로 신청한 ‘관련자’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재심청구 기한도 30일에 불과하다. 그동안 그 결정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많이 생겼지만 이들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항의할 방법이 없었다. ‘전여옥법안’은 재심 청구를 ‘관련자’뿐 아니라 피해를 본 제3자, ‘당사자’까지 확대했다. 또 재심청구 기한도 30일에서 10년으로 늘려 지난 10년간의 활동을 이제라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했다.

대표적으로 논란을 부른 건 동의대 사건이다. 1989년 학내 문제로 농성하던 동의대생들이 전경 5명을 감금하고, 이들을 구하러 온 경찰들에게 불을 질러 경찰관 7명이 숨지게 한 사건이다. 민주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건이었지만 방화치사범 등 46명을 민주화유공자로 판정했다. 희생된 경찰은 결과적으로 반민주인사가 돼 버린 것이다. 불법 감금된 사람을 구하려다 희생되고도 역사에 공적(公敵)으로 기록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뿐 아니다. 1980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일어난 탄광분규는 경찰서를 점령하고, 무정부상태로 만든 사건이다. 이들이 어용으로 낙인찍은 노조지부장 부인을 발가벗겨 전깃줄로 묶어놓고 성적 학대까지 했지만 민주화 유공자로 판정 받았다. 그럼 피해자는 반민주인사란 말인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를 뒤집는 일이 반복되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특정 정권, 특정 이념에 편향돼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 역사적 진실과 건전한 상식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은 열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