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 로비사건, 검찰·경찰 내사과정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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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부고속철도 차량 선정과정의 로비 의혹을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이 수년동안 내사를 벌여왔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들 수사당국이 의도적으로 수사를 회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 검찰〓내사(內査) 3년 만에 겨우 수면 위로 떠오른 경부고속철도 차량선정 과정의 로비 의혹과 관련, 검찰의 수사 시기와 전개 과정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검찰이 정치적 고려 차원에서 수사 시점를 조절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는 가운데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 부랴부랴 구속 집행에 나서게 된 것" 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검찰이 사건을 처음으로 인지한 시점은 1997년 여름으로 추정된다.

경찰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홍콩 내 불법 외환거래에 대한 첩보를 수집한 검찰은 서울지검 외사부에 사건을 배당, 로비스트 최만석씨와 호기춘씨 은행 계좌의 자금 흐름을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미동포인 崔씨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던 데다 프랑스 사법당국에 요청한 수사공조도 사실상 거절당해 내사 자체가 벽에 부닥쳤다는 것이다.

그러다 수사검사가 98년 3월 정기 인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사건의 비중을 감안, 대검으로 자료를 넘겼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이후 중수부에서 2년 이상 물밑작업이 벌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지검 내사 당시의 한 수사관계자는 "경위는 모르지만 97년 7~8월 대검이 갑자기 자료를 '압수' 하듯이 가지고 가는 바람에 내사가 중단됐다" 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당시 김기수(金起秀)검찰총장과 안강민(安剛民)서울지검장 등은 "압력으로 중단된 적 없다" 고 부인했다.

◇ 경찰〓경찰은 이미 95년 말 이번 사건의 두 주역으로 꼽히는 최만석.호기춘씨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가 곧 중단해버렸다.

특히 경찰이 내사에 돌입하자마자 扈씨가 경찰 외사통인 全윤기 전 서울 남대문서장에게 "조사를 무마해 달라" 는 청탁과 함께 8천만원을 건넨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드러남에 따라 경찰이 서둘러 내사를 종결한 데 대해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경찰청 외사분실이 내사에 착수한 시점은 95년 11월.

당시 홍콩 경찰은 崔씨와 扈씨가 미국계 모은행 홍콩지점 예금계좌를 통해 프랑스로부터 5천9백30여만프랑(당시 환율로 한화 1백여억원)을 송금받은 사실을 포착, 한국 경찰에 관련자료를 알려줬다.

이에 경찰청 외사분실에서 곧바로 확인작업에 들어갔지만 별다른 수사 진척 없이 결국 96년 초 흐지부지 내사를 종결했다.

1백억원이 넘는 엄청난 거금이 오간데다 예금계좌의 주인까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식 수사착수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수사 실무책임자였던 朴모 총경은 "崔씨는 국적은 한국이지만 영주권을 가진 재미동포였고 扈씨도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국내에는 1년에 3분의1 정도만 머물러 두명 모두 비거주인에 해당, 외환관리법 적용이 불가능했다" 고 해명했다.

朴씨는 이어 "홍콩 경찰측에 자금의 출처와 범죄혐의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요구했으나 더 이상은 알아내기 힘들다고 알려와 내사를 중단했을 뿐 외부로부터 어떠한 외압이나 로비도 받지 않았다" 고 주장했다.

박신홍.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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