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앞뒤 안맞는 산자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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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세정 경제부 기자

16일 오전 10시 정부 과천청사 제2브리핑룸.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원전센터 예비 신청을 한 자치단체는 한 곳도 없었다"는 짤막한 발표문을 낭독했다.

정부가 7개월간 추진해 온 새로운 원전센터 후보지 선정작업이 성과없이 끝났을 뿐더러 19년째 끌어온 국책사업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는 발표치고는 싱겁기 짝이 없었다.

발표 직후 질문이 쏟아지자 이 장관은 "10월 중에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막판까지 몇 군데 자치단체가 예비신청을 할 움직임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이 왜 신청을 안 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예비신청 마감 닷새 전에 불쑥 '후보지 선정 일정을 잠정 중단하고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공론화 기구를 만들자'는 중재안을 내놨다. 정부가 예고했던 후보지 선정 계획과는 전혀 다른 구도다.

"힘센 여당이 정부안과 다른 구상을 제시하는 바람에 자치단체들이 발을 빼 버린 게 아니냐"는 질문에 이 장관은 "(여당의 제안이) 예비신청 의욕을 약화시켰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자부 실무자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유치 신청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그러면서 "2월에 공고했던 기존 일정은 백지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로운 대책을 내놓겠다는 말과 앞뒤가 안 맞는 얘기다.

7개 군 주민들이 제출한 주민청원서의 효력에 대해서도 장관은 "유효하다"고 말하고, 담당 국장은 "끝난 일"이라고 말했다. 산자부 스스로도 원전센터 정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헷갈리는 모습이다.

현재로선 유일하게 예비신청 효력을 가진 전북 부안군에서 일정대로 주민투표를 진행할지에 대해서도 입장이 분명치 않다. 이 장관은 "투표를 하면 소요가 일어날 수 있다"며 "현행 절차에 따른 주민투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부안은 안 된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딱 부러지게 안 된다는 입장도 아니다.

원전센터 유치를 주장하다 중상을 입었던 김종규 부안군수는 이날 "정부의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생긴 주민들의 갈등과 마음의 상처가 더 크다"고 말했다.

장세정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