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군 베트남전 자아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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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 육군은 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실패인 베트남 전쟁을 '있었던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교훈을 위해서다.

"처음엔 우리가 숭고하고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으며 베트콩은 곧 무릎을 꿇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그 확신은 사라지고 말았다. "

생도들이 읽는 책에 적힌 어느 해병 소대장(소위)의 고백이다.

또 다른 책에는 "미군은 모든 지상전투에서 이겼다. 하지만 정치적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전쟁에선 이길 수 없었다" 는 비판도 있다.

한때 사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고 현재 독일 주둔 기계화 부대 지휘관인 맥밀런 대령이 쓴 책은 "당시 육군 지휘부는 오만했고 거짓말을 많이 했다" 고 통박한다.

비판적인 교수들은 월맹에 비해 미군의 병법(兵法)이 훨씬 허술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월맹의 전술적 핵심이 때론 늪과 같고 때론 파도 같았던 다우 트란(지연전술)이었다고 파악한다.

월맹군은 사상자가 얼마가 생기든 과감히 그걸 감수했다. 또 어떤 때는 게릴라전으로, 어떤 때는 재래식 정규전으로 미군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래서 생도들이 읽는 강의록에는 "다우 트란을 당해낼 대응 전략은 아직 없다" 고 적혀 있을 정도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미군이 아직도 '베트남패전 증후군' 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1991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우리는 베트남 패전의 악몽을 지워냈다" 고 선언했지만 교수들은 그걸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이다.

"걸프전은 베트남전과는 달랐다. 걸프전 때 미군은 응석받이 같았다. 길은 이미 닦여 있었고 비행장도 있었다. 하지만 생도들은 앞으로 걸프보다는 베트남에 가까운 상황을 겪을 것이다. "

사관학교의 한 교수의 냉정한 분석이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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