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변수' 역대 선거 영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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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4년 전인 1996년 4월 6일.

15대 총선 투표일을 5일 앞두고 북한은 정전(停戰)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 무장병력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투입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투표일 사흘 전인 8일 판문점 총격사건으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때를 놓칠세라 유세현장에서 안정론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선거 결과 신한국당은 집권당 최초로 서울에서 1당을 차지하는 등 대승을 거뒀다. 총선 후 야당인 국민회의는 패배 원인의 하나로 판문점 총격사건을 지목했다.

10일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전격 발표하자 한나라당.자민련.민국당 등 야당은 일제히 "선거용" 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역대 선거 때마다 남북관계 변화라는 단골변수가 작용, 선거 판세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실제로 87년 대선 때는 투표일을 17일 앞두고 1백15명의 목숨을 앗아간 KAL기 공중폭파 사고가 발생, 여당인 민정당 노태우(盧泰愚)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 92년 대선 때는 정부가 간첩 이선실사건을 발표해 색깔논쟁이 벌어졌다.

선거 때마다 남북문제의 최대 피해자라고 자처하던 현 정부는 정권교체 직후인 98년 북풍(北風)수사에 착수, '15대 대선 전 구(舊)여권이 북한측에 판문점 총격사건을 요청했다' 는 충격적인 수사결과를 발표해 소문으로만 떠돌던 선거용 북풍의 존재를 밝혔다.

최근 한나라당은 "과거에는 선거 직전 남북관계에 긴장국면을 조성해 여권의 안정론을 부각시킨 반면 현 정부는 화해국면 조성이란 형태로 변모했다" 는 점을 들어 신북풍론을 제기한다.

어쨌든 선거 때마다 오비이락(烏飛梨落.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 돼버린 '북한 변수' 는 이번에도 예외없이 등장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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