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탈국가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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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1830)' 은 오랫동안 전쟁에 관한 최고의 고전으로 군림해 왔다. 그동안 전쟁의 양상이 얼마나 크게 바뀌어 왔는지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구체적 전쟁기술보다 전쟁에 관계되는 인간적.심리적 요인을 해명한 책이기에 수명이 긴 것이다. 전쟁을 정치의 연장(延長)으로 본 것이 그 대표적 통찰이다.

두 세기 가까이 인류의 전쟁관을 대표해 온 클라우제비츠의 관점이 근년 들어 흔들리고 있다. 냉전종식 후 아프리카 각지에서 벌어져 온 전쟁에는 종래같은 정치적 해석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말리아.르완다.에티오피아.리베리아.시에라리온 등지의 근년 전쟁양상을 보면 민주주의고 사회주의고 어떤 정치적 지향성도 보이지 않는다. 약육강식의 폭력이 대규모로 펼쳐질 뿐이다.

토론토대의 토머스 호머딕슨 교수가 9년 전 발표한 논문이 이 변화를 예고한 것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문턱에서' 란 제목의 이 논문에서 호머딕슨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관이 국민국가시대의 세계관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국가가 주역이 되는 전쟁만을 고찰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제 국민국가의 역할이 퇴화하면서 정치이념이 개입되지 않는 노골적 투쟁이 펼쳐질 것을 그는 내다봤다.

아프리카에서 '비정치적' 전쟁이 먼저 나타나는 것은 국민국가의 성격이 애초부터 취약했기 때문이라고 호머딕슨은 설명한다. 유럽 열강의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아프리카엔 국경선이 없었다.

부족과 문화들이 뚜렷한 경계선 없이 뒤섞여 있던 이곳을 식민지로 만든 유럽인들이 제멋대로 경계선을 그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국들은 식민지 경계선을 이어받아 국경선으로 삼았다. 냉전기간에는 소속진영의 지원으로 국가체제가 지탱됐지만 이제 국가해체의 추세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해체 문제는 옛 소련과 옛 유고연방에 이어 인도네시아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유럽인이 국경선을 만들어 준 대부분 아랍국가들도 잠재적 문제를 갖고 있다. 확고한 민족정체성을 가진 우리는 그런 면에서 행운아다.

'민족주의는 반역' 이란 선언까지 나오는 탈국가시대에 우리는 와 있다. 그러나 다가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시대에 민족의식에 근거를 둔 정치력은 총체적 혼란을 막는 방벽이 될 수도 있고 대외경쟁력을 보장하는 힘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세계적 투쟁의 목표는 추상적 정치이념이 아니라 환경과 자원 등 구체적 생존조건이다. 민족통일에도 경제적 측면이 열쇠가 된다.

'북한특수' 논의가 갈피를 잘 잡지 못하고 있지만, 중요한 측면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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