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온 방학 수요 … 교육 인기지역 전셋값 들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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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28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기자가 중개업소에 들어서며 전셋집을 찾고 있다고 하자 김모 사장은 대뜸 “연락처 두고 가세요”라고 말했다. 어떤 전셋집을 찾는지, 전셋값은 얼마나 댈 수 있는지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문 앞에서 주춤거리자 그제야 “보여 줄 전세 물건이 없다”는 짧은 설명과 함께 전세 대기자 목록을 보여줬다. 8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김 사장은 “한 달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며 “1~4단지 6400여 가구 가운데 전세 물건은 2개뿐”이라고 말했다. 전셋값도 일주일 새 2000만원 올라 3단지 117㎡는 4억원을 호가(부르는 값)한다.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에 교육여건이 좋은 지역의 전셋집을 찾는 교육 수요가 예년보다 빨리 늘고 있다. 겨울방학 수요가 아직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인데도 교육 인기지역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들썩이는 것이다.

노원구 중계동 을지공인 서재필 사장은 “학군 좋고 유명 학원들이 몰려 있는 이곳 일대로 이사 오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보통 학군 수요는 12월부터 2월 사이에 주로 움직이는데 올해는 빨리 시작돼 물건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남구 대치·도곡동 일대 중개업소 5곳을 돌아봤지만 전세 물건은 단지마다 고작 2~3개 정도였다. 도곡동 렉슬탑공인 문종규 사장은 “벌써 전세 물건이 동나면서 대기 수요가 중개업소마다 2~3명씩 있다”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대치동 우성은 지난달 말보다 4000만원 정도 올라 102㎡가 5억5000만원, 148㎡는 6억2000만원을 호가한다. 중계동 양지대림1차 108㎡도 같은 기간 5000만원 뛴 2억6000만원 선이다. 목동 매일공인 김흥주 사장은 “전세 물건은 한정돼 있고 수요는 넘치다 보니 집주인이 부르는 전셋값에 곧바로 계약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학군 수요가 많은 분당신도시 서현동이나 일산 마두동 등지에서도 마찬가지. 분당 서현동 대성공인 서구원 사장은 “전세 물건이 이달 들어 계속 빠지고 있다”며 “서울처럼 물건이 많이 달리는 편은 아니지만 예년보다 학군 수요의 움직임이 빠른 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교육 인기지역으로 꼽히는 지역이 아닌 곳의 전세시장은 대체로 안정세다. 28일 오후 성북구 정릉동 일대 중개업소마다 주인을 찾는 전세 물건이 빼곡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중개업소 사장은 “12월 들어야 겨울방학 동안 이사하려는 전세 수요자들이 집을 보러 다니기 때문에 아직은 한산하다”며 “낡은 단지를 중심으로 전셋값도 소폭 내렸다”고 전했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앞으로 입주할 물량이 넉넉하지 않아 전셋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면서 전세 수요가 성수기에 앞서 미리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8일 목동 중개업소에서 만난 최모(42·금천구) 주부는 “방학이 시작되면 아무래도 전셋값이 더 뛸 것 같아 미리 얻으려고 왔는데 이미 전셋집이 동났다고 한다”며 “시간 여유는 있지만 전셋값이 더 오를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 겨울 전세시장이 불안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대출 규제로 매매 수요가 전세로 돌아서며 전세 수요는 예년보다 불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공급은 많지 않아서다.

강남구 개포동 라인공인 양성건 사장은 “올 들어 전셋값이 큰 폭으로 뛰면서 재계약을 원하는 세입자들이 많아 기존 아파트에서 나올 전세 물건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박사는 “강북지역 중심으로 재개발 이주 수요 등이 가세하면 올 겨울 전셋값이 또 한 차례 뛸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일·임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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