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인터넷 버블 예찬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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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인터넷을 모르면 바보 취급을 받는 세상이 돼버렸다. 특히 한국의 인터넷 붐은 세계적으로도 관심사다. 나라가 부도난다고 법석을 떨더니 어느새 인터넷 천국이 됐느냐고 물어온다.

인터넷 버블의 부작용 또한 만만찮다. 선두주자 미국도 인터넷으로 한몫 잡은 경우도 있지만 숱한 기업들이 망했다.

그래도 인터넷 열기는 여전히 세계를 뒤덮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기업들이 망하겠지만 그 열기는 아무도 못말릴 것이다.

최근 서울을 다녀온 사람이면 누구나 한국의 인터넷 열기에 한마디씩 한다. 일본의 한 언론인은 "경제위기는 커녕 온 나라가 인터넷 붐으로 용광로처럼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더라" 고 혀를 내둘렀다. 이처럼 한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화두가 인터넷이다.

한국의 인터넷 붐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은 다양하다. 첫째는 한국을 부러워하는 그룹. 자기네들은 걸리는 게 많아 속시원하게 되는 게 없는데, 한국은 잘도 해치운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 비하면 일본은 이상하리 만큼 조용하다. 인터넷에 관한 한 일본은 국제적으로 상당히 뒤져 있는 게 사실이다. 전화요금 체계부터 뜯어고치기 바쁜 실정이다.

한국의 인터넷 열기는 꾸물대는 일본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정부 안에서조차 "한국을 보라" 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둘째는 비아냥거리는 그룹. 내놓고 말은 안해도 "잘해보시지" 하는 냉소가 깊이 깔려 있다. 부르르 끓다가 이내 식어버리는 한국의 냄비경제를 한두번 봐왔느냐는 것이다.

뒷감당도 못하는 주제에 공연히 투기바람만 일으키다가 얼마 못가 들통날 게 뻔하다는 것이다. 서양 언론들도 최근 그런 조의 기사들을 자주 쓰고 있다.

셋째는 좀더 진지하게 관찰하는 구경꾼들. 일본 경제가 직접 하기 어려운 실험을 한국이 대신 해주고 있으니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지켜보고 참고하자는 그룹이다. 어쩌면 영화감상 하듯 대리체험으로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관객 입장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됐든 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의심하는 시비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인터넷 투자의 과열경쟁이 빚어내는 거품, 이른바 버블에 경계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미 상당한 거품기가 배어 있다는 관측들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인터넷 붐에 대한 일본의 일반적인 분위기는 긍정론이 우세하다.

기술이나 사업성 차원이 아니다. 성패 여부 이전에 인터넷이 몰고 올 가공할 변화의 물결 자체가 더 중요한 관심사다.

어쩌면 일본은 한국의 인터넷 버블을 가소롭게 여기면서도 내심은 바로 그 버블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 버블이야말로 구(舊)질서를 송두리째 지워버릴 수 있는 강력한 '표백제'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거품(버블)의 기능을 결코 얕잡아 봐선 안된다. 비누도 거품이 잘 나야 때가 제대로 빠진다. 거품 자체는 헛것이지만 그것의 순기능은 묵은 때를 머금고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인터넷 버블은 그런 뜻에서 '먹고 튀는' 부동산 버블이나 주식 버블과는 다르다. 인터넷 버블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뉴비즈니스를 찾아나가는 신산업의 창출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빚어지는 변화의 부작용들이다.

오히려 변화의 폭은 버블의 크기에 비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변화를 굳세게 거부해 온 구질서와 기득권층들은 언제, 어떤 형태로 인터넷버블 속으로 삽시간에 녹아들지 모른다.

버블이 속절없이 꺼져버리면 수많은 기업들이 무너져내릴 것이다. 제아무리 파괴가 창조의 어머니라 해도 그 과정의 고통은 상상을 절할 것이다.

이 물귀신 같은 버블이 머금어 갈 대상은 인터넷 투자 기업만이 아니다. 구멍가게들도 결코 예외일 수 없는 유통혁명에서 시작해 학교나 교회에 이르까지 거치적거려 왔던 묵은 것들을 송두리째 바꿔치기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처럼 시행착오의 부작용에 관대한 나라가 또 어디 있겠나. 일본은 그걸 부러워하는 것이다.

이장규 <일본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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