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석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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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허형만(1945~ ) '석양' 전문

바닷가 횟집 유리창 너머

하루의 노동을 마친 태양이

키 작은 소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 있다

그 모습을 본 한 사람이

'솔광이다!'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좌중은 박장대소가 터졌다

더는 늙지 말자고

'이대로!'를 외치며 부딪치는

술잔 몇 순배 돈 후

다시 쳐다본 그 자리

키 작은 소나무도 벌겋게 취해 있었다

바닷물도 눈자위가 볼그족족했다.



바닷가 횟집에 앉아 저녁해를 보는 모습은 어쩐지 슬프다. 그 정경 넘기면 공(空) 일까? 황혼 민박집 같은 공허한 웃음소리가 이승의 살아있는 웃음소리 같지 않다. 시를 쓰는 이유도 이 허무로부터 탈출하는 존재방식이 아닐까. 요즘 어버이날에 효도 선물로 받고 싶다는 부모의 '성형수술'은 이 공허한 웃음소리를 메우는 원초적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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