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먹을거리 ‘두 손 가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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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체에 근무하는 송교일(37·일산서구 주엽1동) 부장은 ‘아내와 아들을 위해 할 일이 많은 주말’을 기다린다. 높푸른고양지속가능발전협의회(이하 높푸른고양) 권오영(61·일산동구 마두1동) 사무국장은 요리에도 도전해볼 참이다. 이들이 ‘살림’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일어난 변화다.

요리하는 아빠 송교일 부장

“도어패킹 청소도 잊지 마세요. 음식찌꺼기가 묻어 있으면 쉽게 마모돼 냉기가 빠져 나가기 때문에 전기료가 많이 나오거든요.”

기자가 송 부장의 블로그에서 본 ‘김치냉장고 청소법’ 얘기를 꺼내자마자 그는 웬만한 주부 못잖은 살림 노하우를 쏟아냈다. ‘남편이 살림에 대해 잘 알면 아내가 피곤해하지 않느냐’는 질문엔 “내 일 네 일 따지지 않다보니 오히려 부부 역할에 균형이 잡히더라”고 답했다.

그가 살림에 눈길을 돌린 것은 아내(이주희·33)가 첫 아들 정민(3)이를 임신한 2006년.당시 아내는 갑상선혹을 수술하려다 뒤늦게 임신사실을 알고 수술을 포기했다. 다행히 갑상선혹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아들도 건강하게 태어났다. 내내 가슴 졸이며 아내의 임신과 출산을 지켜보면서 그는 ‘아빠의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아빠가 하는 요리라니까 반응이 뜨겁더라고요.” 정민이의 이유식을 만들면서 하나둘 모은 레시피로 그는 블로그 활동을 시작했다. 이웃 블로거들의 관심에 용기를 얻어 몇몇 요리 사이트에 레시피를 공개했다. 그동안 쌓인 살림 노하우를 바탕으로 소비자 체험단으로 활동영역을 넓힌 것도 그 무렵이다.

간편요리 체험단에 지원한 1000명 중 ‘덜컥’ 2등으로 뽑혀 100만원 상당의 명품백을 부상으로 받았다. 빵 만들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참여한 체험단에선 60만원 상당의 광파오븐을 얻었다. 이러저러한 활동으로 5000~50만원짜리 상품권을 곧잘 손에 쥐었다.

“연봉이요? 하하. 적지 않아요. 돈이 목적이 아니라 제게 필요한 제품을 쓰면서 소비자로서의 의견을 업체에 전달하는 일이 재밌고 보람돼요.”

그는 앞으로 ‘정민이와 함께 하는 요리’를 시도해볼 계획이다. “장모님이 처남에게 절 닮으라고 이르시던데요. 살림 바이러스를 퍼뜨려야죠. 하하.”

장보는 남편 권오영 사무국장

그 세대가 그렇듯 권오영 사무국장도 별 보며 출퇴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 때문이 아니라 ‘부엌에 얼씬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였다.

그런 그가 1998년 아내(선현숙·55)의 유방암 수술을 계기로 장바구니를 들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팔 힘이 약해진 아내를 대신해서였다. 처음엔 쑥스럽고 어색했다. 행여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봐 도둑질하듯 장을 봤다. 하지만 두세 번 해보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장바구니가 무거울 땐 좀더 일찍 아내를 돕지 못한 게 미안했다. 물건 고르는 안목이 생기면서 재미도 붙었다. 이젠 누구를 만나든 장바구니 든 채 거리낌 없이 인사를 나눈다. “아이들이 언제부터인가 ‘아버지, 이것 좀 사다주실래요?’라며 주문을 하더라고요.”

그가 장보기를 통해 얻은 것 중 하나는 두자녀와 대화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10년 넘게 아들(32)·딸(29)이 쓰는 샴푸며 화장품을 사나르다보니 소소한 얘깃거리가 하나라도 더 생기더라는 것. 그러나 무엇보다 큰 수확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다.

“예전엔 물을 그냥 바가지로 떠먹었잖아요. 요즘엔 페트병에 담는 것도 모자라 몇 개씩 묶어 다시 포장을 하니 쓰레기 배출량이 얼마나 많겠어요. 물이 그 정도니 다른 제품이야 말할 것 없죠.”

환경의제를 다루는 지금의 높푸른고양에 몸을 담은 2002년 이후엔 장보는 눈썰미가 더 매워졌다. 그는 가능한 한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장을 보러 다닌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물건도 적게 사기 위해서다. 지나친 소비야말로 환경문제의 주범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필요한 물건은 조금씩 자주 사러 다닌다. 포장을 최소화하고 운반 거리가 짧은 제품을 고르는 것도 그의 친환경 장보기 노하우다.

“아내 따라 장보러 나오는 남편이 많지만 대부분 방관자예요. 장보기에만 관심을 기울여도 환경 살리기에 일조하는 거죠.”

[사진설명]높푸른고양 권오영 사무국장은 아내를 대신해 10년 넘게 장보기를 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그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고, 포장을 안 한 제품을 고르는 것이 친환경 장보기 노하우"라고 말한다.

<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

< 사진=최명헌 기자 choi315@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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