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중앙시조대상]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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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시의 천년을 마감하고 새 천년의 아침을 여는 시간에 '중앙시조대상' 의 촛불을 밝혀놓는다.

돌아보면 시의 천년은 시조의 천년이 아니던가.

시조는 이 나라 사람들의 삶으로 넋으로 가락으로 천년을 불밝혀 온 터. 여기 새로운 불꽃을 그 위에 얹는다.

대상심사는 본심에 올라온 여덟 시인의 작품중 민병도씨의 '초설기(初雪期)' , 박기섭씨의 '국립 경주박물관의 봄' , 이지엽씨의 '적벽을 찾아서' 의 3편으로 압축 되었다.

민병도씨의 '초설기' 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오랫동안 묵혀온 내면의 길찾기를 깊이 있게 이끌어 나갔으나 '명상의 들' 같은 관념적 표현이 현실감을 떨어뜨리고 있는 점이, 박기섭씨의 '국립 경주박물관의 봄' 은 소재의 중량감에 비해 시의 호흡이 낮게 혹은 짧게 소묘로 그려져 있는 점이 지적되었고, 수상작은 이지엽씨의 '적벽을 찾아서' 가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결정되었다.

대상수상작 '적벽을 찾아서' 는 시인이 가슴에 흐르는 물소리 같은 화두를 짊어지고 '적벽' 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수행하는 그 정진의 아픔이 깊게 깔리면서도 아주 따뜻한 낱말들로 감싸여 있다.

바로 새천년을 맞는 기도문처럼 흐트러진 생각들을 한곳으로 모아주는 힘이 이 작품을 높이 사게 해주었다.

신인상은 역시 예심위원들이 가려뽑은 여섯분 시인들의 작품에서 강현덕씨의 '하얀티티새' , 이달균씨의 '북어' , 이종문씨의 '입동(立冬)' 이 마지막 경합을 벌였다.

강현덕씨의 '하얀티티새' 는 언어들이 팝콘처럼 튀기며 일으키는 이미지의 투명성이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중량감에서 밀렸고, 이달균씨의 '북어' 는 사물에 대한 인식의 눈이 번뜩였으나 '가슴을 짓밟고' ' '피를 흘리며' '같은 진술적 표현이 지적되어 이종문씨의 '입동' 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신인상 수상작 '입동' 은 시적 발상이 독특하면서도 개성적인 표현력 또한 뛰어나서 여지껏 보던 시조의 틀을 새롭게 맞추어갈 수 있는 기량을 한껏 보여주고 있다.

'가가호호' '천지현황' 같은 한문투를 쓰면서도 척척 들어맞게 하는 공인(工人)다움이 이 시인에게 큰 기대를 갖게 하였다.

심사위원 이근배.이상범.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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