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칼럼] 도시-수도권 왜 차별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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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선거구제도에 대한 논란이 정치개혁의 중심의제처럼 돼버린 현실은 우리 정치의 후진적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돈 안드는 정치, 투명한 정치,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는 정치, 민주적 의사결정의 제도화란 정치개혁의 목표는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소선거구냐 중선거구냐, 전국구 비례냐 권역별 비례냐 등 각 정당의 치열한 이해득실계산만이 남아 있다.

당초 여권이 '중선거구+권역별 비례대표제' 를 내놓은 것은 해도 너무한 것이었다.

지역대립과 지역정당구도 완화가 아무리 시급한 과제라 하더라도 선거제도 개혁의 초점을 거기에만 맞추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둘 중의 하나만 내놓아도 국민들이 소화하기가 어려운 판에 한 가지 명분으로 2중의 장치를 하겠다는 건 과욕이었다.

여야는 3당3역간의 협상을 통해 중선거구제를 포기하는 대신 여권은 '소선거구+권역별비례' , 야당은 현행대로 '소선거구+전국구비례' 를 내놓고 절충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야당안은 현행제도이니 말할 孤?없고, 여당측의 '소선거구+권역별 비례' 협상안도 독일과 일본에서 현재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독일은 연방의회의원의 절반은 소선거구제로 나머지 절반은 주(州)별 비례대표제로 선출하며, 일본은 중의원의원의 60%를 소선거구제로 나머지 40%는 11개 권역별 비례대표로 뽑는다.

독일과 일본의 제도는 후보의 지역구 및 비례대표 중복출마와 유권자의 지역구 후보 및 정당명부에 대한 2중투표를 허용하고 있다.

여야의 어느 절충안으로 결말이 나도 제도 자체에는 각기 유력한 선례가 있다.

다만 권역별 정당명부제는 지역정당구도를 완화시키는 데는 기여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연고지역의 집중지지도가 가장 높은 국민회의에 유리할 것이다.

선거구제도보다 국민에게 더 피부에 닿는 문제는 국회의원의 수를 어떻게 하느냐일 것이다.

그동안 여야는 현재 2백99명인 의원정수를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10%쯤 줄여 2백70명 정도로 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며칠 전 한나라당이 의원정수를 줄이지 말자고 총대를 메고나와 여권도 못이기는 체 따라가고 싶어하는 분위기다.

사회 각 분야의 피나는 구조조정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국민을 우롱하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선거제도를 개혁한다면서 각당의 정략과 관계되는 선거구제에만 관심이 있을 뿐 국민의 평등권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심각한 선거구 인구불균형 해소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는 것도 큰 문제다.

어차피 소선거구제가 바뀌지 않더라도 비례대표의 비중이 커지고 의원정수가 줄어들면 지역선거구의 대대적인 재획정이 불가피하다.

지난 95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심각한 선거구별 인구불균형을 위헌으로 판정했다.

이는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의 위헌판결 및 이에 따른 후속 입법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미국은 10년마다 실시되는 국세조사결과에 따라 각주에 하원의석을 재배분하며, 이 재배분에 기초해 주의회는 선거구간의 인구수가 비등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한다.

연방대법원은 0.7% 정도의 인구편차가 난 뉴저지주의 선거구획정을 위헌으로 판시할 정도로 엄격하다.

독일선거법은 특정 선거구와 전체선거구 평균인구간의 편차가 상하 25%를 넘지 않아야 하고, 인구이동으로 그 편차가 33.3%가 넘게 되면 선거구를 다시 획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94년 제정된 선거구획정심의위설치법에서 인구 최소 선거구와 최다 선거구의 인구격차 용인 범위를 두배로 제한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95년의 위헌결정에서 9명의 재판관 중 5명의 다수 의견으로 선거구별 인구가 평균 선거구로부터 상하 편차 60%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는 인구 최소 선거구와 최다 선거구의 인구격차를 4배까지 용인하는 것으로 제대로 된 나라로선 유례없는 용인 폭이다.

당시 5배 이상의 격차가 있었던 선거구 현실에 너무 큰 충격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에서였겠으나' 마치 이 기준만 충족하면 국민의 평등권이 보장된다는 식의 현재 여야 협상 행태는 말도 안된다.

선거구간의 심한 인구 불균형은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에 비해 농촌, 수도권에 비해 영.호남 등 비수도권의 '과잉대표' 로 나타났다.

이는 농촌정책의 합리적 변화를 저해할뿐더러 지역대립의식이 큰 지역이 그런 의식이 작은 수도권에 비해 과잉대표됨으로써 지역정당구도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선거구의 인구편차를 줄이는 건 국민의 평등권 침해와 정책의 왜곡을 줄일 뿐 아니라 지역정당구도를 완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더구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경우엔 권역별 의원정수는 엄격히 인구비례에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구불균형이 오히려 심화돼 정치개혁이 아닌 개악(改惡)이 될 것이다.

성병욱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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