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출두 박시언씨 "청와대에 로비한적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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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사직동팀 최종보고서를 공개한 박시언(朴時彦.62)신동아건설 고문은 지난 27일 오후 특검에 자진출두해 보고서 입수경위 등을 특검팀에 밝혔다.

그는 "지난 2월말 최순영(崔淳永) 회장 구속 배경을 물어보기 위해 검찰총장을 찾아갔더니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이 '박주선(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준건데 읽어보고 회개하라' 며 문건을 건네주길래 부속실 여비서를 통해 한부 복사해 사본을 갖고 나왔다.

그후 이를 4부 복사해 2부는 그룹 비서실장에게, 나머지 2부는 (내)집과 사무실에 보관했다" 고 진술했다.

그는 또 "영부인과 김중권(金重權) 전 비서실장은 만난 적도 없는데 내가 그분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설이 나돌아 억울하다" 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와 함께 "金전총장이 기자회견을 하며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 걸 보고 고민하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종보고서를)공개하게 됐다.

공개 여부를 崔회장과 상의했더니 崔회장이 '옷 사건 때문에 곤욕을 치렀는데 또 휘말리지 말자' 며 반대했다" 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朴씨의 공개 배경 설명에는 의문이 많다. 보고서 공개로 옷 로비 사건은 金전총장과 朴전비서관이 사법처리될 처지에 놓이는 등 폭풍으로 변했다.

이런 상황 변화를 朴씨가 예측 못했을리 없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노렸을까. 보고서 공개에는 '파문 진화용 희생양 잡기' '신동아그룹 음모론' '朴씨의 섭섭함 토로' 등 여러 변수가 개입돼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특검팀 주변에서 나돌고 있다.

희생양 잡기는 金전총장의 낙마에도 불구하고 옷 로비 사건의 불길이 좀처럼 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또 다른 희생양을 만들어 진화를 유도하기 위해 누군가가 공개토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朴씨가 청와대 로비설을 강력히 부인하는데다 공개에 따른 여파가 청와대에 치명상을 입히는 독화살로 변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독이 곧 약' 이라는 논리를 과연 폈겠느냐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신동아 음모론은 崔회장측이 구속과 경영권 박탈을 겪으면서 현정부에 타격을 주기 위해 전격 공개했다는 논리다.

하지만 朴씨가 사법처리의 굴레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선뜻 동조했을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개인적 이유로 보는 근거는 朴씨가 80년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미국 망명 시절, 현정부의 핵심인사들과 교분을 맺고 金대통령에게도 도움을 줬다는 설 등 그의 전력에 따른 정황에서 비롯된다.

즉 로비가 먹혀들지 않자 朴씨에게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을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느냐' 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이다.

그러나 朴씨가 단순히 섭섭함을 표시하기 위해 청와대를 겨냥하는 무모함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김기찬.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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