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 “삼청동서 나 보면 이름 불러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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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경호원을 피해 삼청동 동네에서 놀 생각이니 길거리에서 절 보시면 제 이름 부르세요. 막걸리집, 수제비집 모시고 갈 테니 서로 알고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20일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 인근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와 독거노인 등 주민 30여 명을 초청해 점심을 같이했다. 역대 총리들도 더러 인근 주민들을 초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 주민을 위주로 초대한 것은 이례적이다. 정 총리는 “어릴 때 굉장히 어렵게 살아서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시는 분들을 모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총리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6년간 제삿날과 명절을 빼고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며 “옥수수 가루와 밀가루로 생활했다”고 말했다. 또 “날씨 괜찮은 날은 낮 11시50분쯤 교실에서 빠져나가 뒷동산에서 놀고 오면 됐는데 비 오는 날에는 갈 데가 없어서 괴로웠다”며 “저는 지금도 비 오는 게 싫다. 비가 오면 밤에 오지 낮에 오나 하는 불만이 있었다”고도 했다.

정 총리는 특히 “제가 (맘대로) 돌아다니는 스타일인데, 경호원들이 저를 데리고 다녀서 불편하다”며 “앞으로 경호원을 피해 삼청동 동네에서 놀 생각이니, 서로 인사하고 지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찬상엔 꼬리곰탕에 막걸리가 곁들여 나왔다. 정 총리는 ‘나라와 가정과 자신을 위해서’를 축약한 “나가자”라고 건배 제의를 했다. 한 주민은 “삼청동에 38년간 살았지만 총리 공관에 초청되기는 처음이다. 또 불러달라”고 했고, 정 총리는 웃으며 “내년에도 만나고 싶으시면 총리 오래하도록 도와달라”고 답했다. “장애인·노약자용 엘리베이터는 절전하지 말고 정상 운행해달라”는 한 주민의 말에 “할 수 있으면 시정하겠다”고 했다.

부인 최선주 여사도 "주민께 기여할 게 있나 생각해 보겠다”며 "(기여)하고 나가면 저도 기쁘겠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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