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좌파 독립운동 규명하되 옥석 가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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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좌우대립의 비극적 역사 때문에 독립운동사의 한쪽은 알면서도 묻어두고 있는 측면이 있다"며 일제 강점기의 좌파 독립운동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음지에 묻혀 있던 야사(野史)를 정사(正史)의 양지로 끌어내겠다는 기본 취지에는 동감한다. 이는 과거사 정리작업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될 문제였다. 그러나 대통령이 과거사 규명의 구체적 방향까지 제시하고 나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대통령의 발언은 진상조사위원회의 인선과 활동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 경우 조사 결과에 대한 객관성도 의심받게 된다.

일제하 독립운동은 몇 갈래로 나눠 진행됐다. 1917년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성공하자 상당수 지식인이 사회주의에서 해법을 찾으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들의 항일운동사는 해방 이후 격렬한 좌우대립과 남북한 별도 정부 수립,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역사의 그늘에 묻혀야 했다. 남북한 정부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첨예한 대립을 벌여야 했기에 제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 이제 와서 그런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좌파 독립운동을 외면한 게 큰 과오였던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역사 왜곡이다.

이제 좌파 독립운동 재조명론이 나올 만큼 우리의 정치.경제적 힘이 커졌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서훈과 포상은 엄격한 기준에 따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대부분의 좌파 독립운동가들은 해방 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다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세력에 의해 숙청되고, 살아남은 일부는 동족상잔의 6.25 남침에 앞장섰다. 또 일부는 남한 내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거나 남한 정부의 전복을 시도했다. 그렇기에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만으로 해방 이후의 행적과는 상관없이 훈장을 주고 표창을 하게 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흔드는 사태를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좌파 독립운동사를 재조명은 하되,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에 맡겨야 한다. 정치적 동기나 목적으로 이를 이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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